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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Feb 04. 2025

매화 구경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난감한 공간에 놓여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편집장, 서연, 나, 그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 나는 괜찮다고 쳐도 무료 카지노 게임의 등장에 편집장과 서연이 불편한 얼굴을 짓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표하진 못할 것 같다.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무료 카지노 게임가 운을 뗐다.


“이 계약, 추진하려는 진짜 이유가 뭐죠?”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죠?”


편집장이 대답했다.


“아니, 그거 말고.”


무료 카지노 게임가 라이터를 품에서 꺼내며 그의 말을 끊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그리고 서연이 대화에 참여했다.


“저희 출판사의 첫 책이 될 예정인데, 마음에 안 드세요?”


왜 나를 보며 말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사장님 부지가 아니었어도 이 사람 글이 발간될 수 있었나요?”


무료 카지노 게임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되물었다.


“그럼요. 지금껏 온 투고작 중에 가장 괜찮았어요.”


“이 사람이 투고를 했던가? 나는 다르게 알고 있는데?”


“투고하시진 않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연이 닿았잖아요. 그거면 충분히 낭만 있는 상황 아닌가요? 그리고, 금연이에요.”


“담배가 어때서? 작가들은 입에 달고 사는 물건 아닌가? 자, 당신들은 솔직해질 필요가 있어요. 이 사람 글에 그다지 흥미 없잖아. 어떻게든 우리 사장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출간을 추진하는 거고.”


“오해입니다.”


편집장이 무료 카지노 게임의 담배 연기에 발끈하려는 서연을 막아 세우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무료 카지노 게임를 향해 물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무료 카지노 게임는 재를 털고서 대답했다.


“해 보세요.”


편집장은 끼고 있던 돋보기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고운 말이 오가긴 그른 것 같았다.


“사장과의 관계가 불편해서 이러시는 건지, 미생 씨의 업무에 차질이 생길까 봐 이러시는 건지, 그를 확인하고 싶은데.”


그러나, 겨우 그까짓 말에 밀릴 무료 카지노 게임가 아니었다.


“사장과의 관계? 내가 무슨 그 사람과 불륜이라도 저질렀다는 것 같이 들리지만, 잘 모르겠고요. 나는 이 사람 업무에 차질이 생겨도 별 상관없어요. 왜? 그만큼 작은 회사거든.”


“그럼, 왜 미생 씨의 책 출간에 반대하시는 건지.”


“내 입으로 말해야 해요?”


그에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연이 퉁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하- 진짜 너무들 하네. 여기 있는 미생이가 저자죠?”


“네.”


“근데 왜 이쪽으로 들어올 인세가 애먼 사장한테 떨어지는 건데요?”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말에 편집장이 볼펜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게 어때서요?”


서연이 말했다.


“‘그게 어때서요?’ 그게 그쪽이 뱉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에요?”


“동업자 입장에서 나쁠 거 하나 없는 조건인 것 같은데요. 인세가 그쪽 사장한테 조금 떨어진다 해서 미생 씨가 회사에서 안 좋게 보일 일도 없을 것 같고요. 오히려 누이랑 매부가 같이 좋아지는 거 아닌가요?”


“말귀를 전혀 못 알아듣는구나?”


“아까부터 자꾸 반말을 섞으시는데, 그거 되게 예의 없어 보이니까 그만두세요.”


“그랬어요? 기억 안 나는데?”


그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는 담배를 나무 책상에 비벼 껐다.


“지금도 하셨습니다.”


“미안해요. 내가 원래 싸가지 없는 사람한테는 싸가지 없게 구는 버릇이 있어서.”


“저기요!!!”


서연의 고함 이후, 편집장이 나를 바라봤다. 그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지만, 나는 설화의 든든함에 이미 사로잡혀 있었기에 그녀의 꼭두각시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타인의 눈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재밌었다. 회사, 나, 출판사. 그리고 여자 둘의 팽팽한 기 싸움. 이만한 구경거리는 드물다. 머릿속에 새겨 둬야 한다. 눈이 멀 내일을 달래기 위해.


“일단은 편집장인 내 선에서 결정한 일이니 제가 차선책을…”


그때, 서연이 소리쳤다.


“편집장님은 가만히 계세요!! 그리고 뭐가 편집장님이 결정한 일이에요. 제가 다 한 건데.”


“아니…”


“그래, 까놓고 솔직히 말해 볼까요?”


“말해 봐요.”


“[식물인간] 이거 애당초 그렇게 많이 팔리지도 않을 거예요. 작은 출판사에서, 그것도 등단 못 한 신인이, 내세울 것도 없는 저자가 쓴 책이 얼마나 팔릴 거라고 생각하세요? 100부? 1,000부? 아뇨. 제가 장담컨대 50부도 안 팔려요. 그리고 관계가 어떻게 됐든 이 정도로 좋은 기회? 무릎을 꿇고서라도 받으려고 할 겁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글쟁이들이요.”


“그만하지.”


편집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한번 폭주를 시작한 서연은 멈추지 않았다.


“미생 씨도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 봐요. 제 말이 틀렸는지. 아니라곤 말 못 할걸요? 안 그래요?”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신발을 한 번 툭 친 다음, 대답했다.


“맞는 말이에요.”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좋은 기회 인정. 근데 사장한테 가는 인세는 인정 못 해요.”


“그쪽이 뭔데 저희와 미생 씨의 계약을 인정한다, 못 한다, 하시는 거죠?”


“이 사람 애인이니까.”


그 순간 서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그거랑 이거는 별개죠.”


“왜 별개지? 내 남자 일에 우렁각시가 개입하는 건데. 게다가 저는 회사랑도 관련 있는 사람이잖아요? 직급을 말 안 했던가? 들어오자마자 말했지 싶은데.”


그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털어놓아 보세요. 사장한테 가는 오 프로의 인세, 그걸로 얼마나 깎으셨어요?”


그 말을 들은 서연의 머리가 뒤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무료 카지노 게임가 제대로 짚은 모양이었다. 나 역시 편집장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 거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무료 카지노 게임도 나를 보더니 뒤따라 의자를 뒤로 뺐다. 썩어 들어가는 표정을 감추려야 감출 수 없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가 이만큼 애를 써 줬으니, 이제 내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의자를 발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계약서 수정하면 연락하세요.”


출판사에서 나온 설화는 건물 창문에 대고 중지를 올렸다. 웃음이 절로 났다. 설화는 주차장에 있는 뾰족한 돌멩이를 걷어차며 나를 돌아봤다. 미소가 걸려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의 눈코입을 바라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편집장이 듣든, 서연이 듣든, 우리는 상관없었다.


“기분 좋다.”


“진작 이렇게 나갔어야지, 바보야.”


“난 내 인생이 늘 을에 있는 줄 알았어.”


“잘됐네. 지금부터 누려 봐. 갑의 인생.”


“근데, 누나. 우리 둘, 잘못하면 잘릴지도 몰라.”


“자르라 해- 퇴직금으로 여행이나 가자.”


“매화 좋아해?”


“좋지- 매화 보러 갈까?”


나는 손가락을 굽히며 날짜를 계산했다.


“이번 주말 어때?”


무료 카지노 게임는 대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기서 나는 굳이 말했다.


“오늘이 마침 목요일이라서. 내일은 눈이 안 보이니까.”


“그래. 이번 주말에 가자. 내일 병가는 내가 제출해 놓을게.”


“이 빚을 어떻게 갚지? 아주 크게 진 것 같은데.”


“네가 운전하고, 데이트 비용도 네가 내고. 또, 뭐, 내 인생 책임지는 거?”


“인생 책임지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해?”


“여자 마음 흔들면 인생 책임져야 해. 몰랐어?”


“금시초문이야.”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누가 그랬던가. 한 번의 욕설을 허락받아 놓고, 쉰여덟 번의 욕설을 내뱉어 정학 처분당했다고. 나쁘지 않은 비유라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입을 빌려 내 속에 있던 그을음을 모조리 긁어 내 버렸으니까. 운전대를 잡고 회사로 돌아가는 지금도 그저 미소가 지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그 굉장한 흥분감은 이윽고 나를 다른 길로 현혹했다. 아니, 아마 내가 그 길로 들어선 걸지도 모르겠다.


눈이 멀어서 다행이야.’


그게 아니었더라면, 무료 카지노 게임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는 가정. 확실히 성배에 든 단물을 마시던 중에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다. 이후로는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길을 다져 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선과 악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누구의 밧줄에 힘을 실었는지도 말이다. 정신이 돌아왔다고 느껴질 때쯤 목에 힘이 들어갔다. 회사의 주차장이 보였다. 기분이 아찔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 발의 절반 이상을 내밀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무료 카지노 게임의 얼굴을 바라봤다. 나의 유일한 선. 귀하디귀한 노란빛의 선함으로만 남아 있을 나의 여자. 나의 시선을 느낀 무료 카지노 게임가 고개를 돌려왔다.


“무슨 생각 했어?”


“응?”


“그런 얼굴은 처음 봐.”


“내 얼굴을 말하는 거야?”


“무서웠어.”


“아, 미안. 나도 잘 모르겠어. 마치 어디론가 끌려갔다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야.”


“좋은 곳은 아니었지?”


무료 카지노 게임는 눈치가 빨랐다.


“응. 처음 가 보는 곳이었어.”


“다시는 가지 마.”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오늘로 시작된 이 속삭임이 앞으로는 더욱더 큰 방울로 내 마음 한 칸을 자리할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제고 멈출 줄 모르는 어린아이의 비눗방울 놀이처럼 말이다. 복도에 들어서니, 그런 나를 책망하는 듯한 성민의 타자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를 지나쳐 문을 밀었다.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깔끔하게 가르마가 타 있는 머리 부분에서 무게감이 느껴졌고, 이어서 흰 가루들이 사방으로 덕지덕지 떨어졌다.


“아- 진짜-”


뒤따라 들어온 무료 카지노 게임가 나의 몸을 밀치며 소리쳤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좋은 날이잖아. 기분 좀 내고 싶었지.”


“이건 진짜 국민학교 때나 하던 거잖아요. 하실 거면 양이라도 적당히 하시지, 이게 뭐예요. 사람이 눈 인형이 됐네.”


그러던 중 성민이 곁들였다.


“이제 작가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무료 카지노 게임가 정색하며 말했다.


“성민 씨까지 왜 그래. 미생 씨, 빨리 화장실 다녀오세요.”


나는 얼른 대답했다.


“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이를 드러내며 씩 웃어도 보았다. 어떤 표정을 지어도 검은 눈동자에만 시선이 갔다. 방금도 평소와 같은 기분이었더라면 좋게 반응해 주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건조했다. 이 무한에 가까운 기분이 무얼 뜻하는 걸까. 무력감이 든다. 감정이 겹쳐서인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낮, 나는 갑이 되어 보았다. 그리고 오늘 밤, 나는 눈이 먼다. 아무래도 두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뒤섞인 모양이다. 세수를 한 차례 했다. 당최 분이 가시질 않았다. 세수를 다시 했다. 분명 차가운 물인데도 차가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엔 물을 한껏 받아서 얼굴을 담가 보았다. 눈을 뜨니 얼굴에 묻어 있던 하얀 가루들이 물에 풀어지는 게 보였다. 온몸에 전기가 흘렀다. 내일의 시야를 앞당긴 기분이 들었다. 물을 내리고, 다시 깨끗한 물을 받았다. 얼굴을 담그니 이번에도 하얀 가루들이 눈 앞을 가렸다. 휴지 서너 장을 뽑아 얼굴을 구석구석 닦았다. 머리엔 여전히 희뿌연 가루가 잔뜩 껴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조금도 건드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그 상태로 화장실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뭐야, 머리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목소리다. 나는 거짓으로 대꾸했다.


“턴다고 털었는데, 아직 있어요?”


“이거 봐요. 사장님. 이런 장난 사람 기분 안 좋아지게만 한다니까.”


나는 말하지 않았다. 사장의 눈을 보니, 아직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 시시하고도 유치한 장난을 칠 정도로 남의 것을 빼앗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참으로 궁금했다. 나는 터벅터벅 자리를 향해 갔다. 성민이 나를 보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가져갈 게 있으면 가져가라는 마음가짐이다.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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