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과 거식-2
평생을 ‘온순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MBTI로 따지면 심리적인 에너지를 자기 내면에서 찾는다는 I의 성향이었다. 보통의 I들이 ‘그냥 I’라면 현주는 소문자가 세 개 붙은 ‘iii’ 정도 됐겠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에도 말을 뱉어내기보다 귀로 듣는 걸 선호해 늘 수줍은 미소만 띠고 있다. 이런 성향을 일컬어 행동 보다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내향형이라고 하던데 그 순간의 그녀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생각이란 걸 했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겠지. MBTI는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하는가 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무료 카지노 게임가 사시나무 가지 떨리듯 떨고 있을 만큼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문제집을 풀기 싫다고 평소보다 조금 더 짜증을 부렸을 뿐이다. 어쩌면 평소와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십 분만, 오 분만 더 놀고 하겠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를 기다리지 못하고 끌고 와 앉힌 건 현주였다. 이왕 기다린 것을 오 분만 더 기다려 줬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유난히 모든 게 거슬리는 하루였다. 쌓여있는 문제집, 텅텅 빈 냉장고, 엉망으로 벗어놓은 운동화, 머리카락이 잔뜩 엉켜있는 하수구 구멍, 각종 카드값으로 통장의 잔고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알림음. 어떤 것이 시발점이었는지 고작 한 개의 나뭇가지였을 때는 거슬리지 않던 것들이 한데 모이니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며 그녀를 위협했다. 하지만, 어떤 상황도 무료 카지노 게임의 눈물 앞에 당당할 수 없다.
학부모 상담 시간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성실한 무료 카지노 게임라고 칭찬을 받았고, 동네 엄마들로부터는 예의 바르고 밝은 무료 카지노 게임라고 칭찬을 받았다.
“엄마 닮았나 봐요.”
아빠를 모르니 평소 차분한 인상이었던 엄마를 칭찬할 수밖에. 무료 카지노 게임에 대한 칭찬이 어쩌면 자신을 칭찬하고 있는 것 같아 우쭐했고 어린 시절 느꼈던 공허함을 채워주는 것 같았다. 칭찬에 느슨해지지 않도록 무료 카지노 게임를 잡은 고삐를 바짝 움켜쥐었다. 더 반듯하고 착실한 무료 카지노 게임가 될 수 있도록 나를 따르라!
“에이, 하기 싫은데.”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너는 바른 무료 카지노 게임 착한 무료 카지노 게임니까 성실해야 하잖아. 현주의 바람과 다르게 삐딱하게 앉은 무료 카지노 게임는 연필로 문제집을 벅벅 문질렀다. 하품하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에 출력 버튼이 있었는지 나뭇가지 뭉치가 현주에게 달려들었고, 찔리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찔러야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료 카지노 게임의 형태가 잔뜩 웅크리고 있는 패잔병 같았다. 분명 이겼는데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당당하지 못했으니까.
거칠게 찢긴 무료 카지노 게임의 문제집과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는 연필 지우개 따위가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 무료 카지노 게임가 기억하는 건 당연하다. 단지 과음한 다음 날 가위로 기억을 잘라버렸던 것처럼 현주의 기억만 깔끔하게 잘려있었다. 단지 덩치가 더 크다는 이유만으로, 나이가 더 많다는 것만으로. 강한 것으로 약한 무료 카지노 게임를 비겁하게 찍어 누른 그녀가 오히려 패배자였다.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현행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을 탓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욕심을 부렸다. 잘 키우고 싶다는 추상적인 마음에 무료 카지노 게임를 끌어안고 허리에 줄도 달지 않은 채 번지점프 하겠다고 뛰어내린 셈이다. 칭찬받는 착한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 만족하지 못해 엄마라는 우월감을 무기 삼아 휘두르며 무료 카지노 게임를 몰아세웠다. 밤새 검색하고 중고 사이트를 뒤져 책장을 가득 채운 전집을 무료 카지노 게임가 손도 대지 않았을 때, 열심히 비교하고 분석해서 구입해 온 문제집 앞에서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
그녀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고 민낯이 공개된 것 같아 더욱 목줄을 세게 잡아끌었다. 엄마라면 그래야 했고, 엄마니까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다.
수포자였던 현주가 무료 카지노 게임의 수학 공부를 봐주는 데는 사실 한계가 있다.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만 했던 원리를 설명해 줘야 했으니 난감하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머리가 굵어질수록 분명하게 느껴졌다. 내 무료 카지노 게임의 속도에 맞춰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만 집중하겠다고 시작된 엄마표 공부의 위기였다. 하지만 티를 낼 수 없는 노릇이다.
“너랑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엄마도 대학 다시 갈 수 있겠다.”
“엄마는 어느 대학 나왔어?”
분위기를 되돌려 보고 싶어 농담처럼 던진 한 마디였는데. 현주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무료 카지노 게임의 입에서 나온 답은 예상하지 못했다. 도둑질하다 걸린 것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막연히 언젠가는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는데.
네 주제에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들었냐고 멸시받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던,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사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아는 학교도 없었는데.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게 했던 임신 소식, 재수할 수 없었던 그 당시의 가정 형편, 무료 카지노 게임가 공부하는 시간마다 축구 중계를 보고 있는 남편의 모습. 잊고 싶었던 기억들과 거슬리는 모든 것들이 순서와 상관없이 뒤엉켜 쏟아졌다. 이불을 아무리 잡아당겨도 침대가 가려지지 않는 것처럼, 숨기고 싶었지만 숨겨지지 않던 모든 것들이 틈새를 비집고 나왔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끔찍한 말이 튀어나왔다. 말을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한심하고 추악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도 아니었고, 흐름이 끊긴 공부와 관련된 것도 아닌 엉뚱한 말이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를 통해 자신을 인정받고 싶었던 욕망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운 스스로를 숨기려는 듯이 엉뚱한 소리를 뱉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냥 다 때려치워!”
기관차는 다시 폭주했다. 거짓말을 숨기려 들면 결국 더 큰 거짓말로 돌아온다.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은 숨기려 할수록 무료 카지노 게임를 향한 신뢰와 애정이 집착과 채찍질로 변질됐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 무료 카지노 게임를 공격했다.
도대체 누굴 위한 공부인지 무엇 때문에 하는 건지. 어쩌면. 잘하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은 자신의 욕심이었을 그것과 마주해야 했다. 공허함이 미친 듯이 밀려와 한기가 느껴졌다. 당장 무엇이든 채워 넣어야 했다. 배가 고프다.
“엄마, 미안해요.”
무료 카지노 게임가 먼저 다가왔다. 먹을 것으로 채워 넣기 위해 집중하던 현주보다 먼저 다가와 사과하는 용기를 가진 무료 카지노 게임가 더 어른 같다. 뭐가 미안한 건데.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먼저 사과한다.
엄마에게 외면당하고 싶지 않은 무료 카지노 게임의 두려움일지도 불안정한 엄마의 모습에서 느껴진 공포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잔뜩 찢어져 엉망이 된 문제집은 여기저기 테이프로 붙여 놔 더욱 걸레 조각 같았지만, 그걸 붙이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찢긴 너의 마음도 이렇게 붙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까 놀랐지? 엄마도 그렇게 소리 지르고 화내서 미안해.”
화를 내는 것 보다 사과가 더 어렵다. 현주의 마음을 알았는지 품 안에 폭 안긴 무료 카지노 게임는 미처 터뜨리지 못한 울음을 그제야 터뜨렸다. 절규에 가까운 소리였다.
“이젠 짜증 안 내고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공부 먼저 하고 놀면 되잖아.”
“또 잔소리!!”
[익명게시판]
사이버 대학에 등록했어요. 내 인생에 공부는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무료 카지노 게임를 키우다 보니 욕심이 생겼어요. 그리고 무료 카지노 게임보다 저에게 집중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 같더라고요.
다시 시작이에요. 나이대도 다양하고 생각했던 것 보다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많아서 놀랐어요. 다들 공부 못해서 환장한 사람들 같은데, 학교 다닐 땐 뭐 하다가 이제 와 공부한다고 모였을까요? 물론 저를 보는 그들의 시선도 비슷하겠죠?
오랜만에 하는 거라 잘 될지 걱정이지만 장학금 받으면 우리 아들 소고기 사주려고요. 당분간 집안일에 대해서는 흐린 눈을 장착해야겠어요. 걱정도 되지만 설레기도 해요. 나를 위한 공부라니. 두근두근.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