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펑퍼짐한 살구색 반바지를 즐겨 입으시고, 시력이 좋지 않아 두꺼운 안경을 직접 개조해 쓰셨다. 안경알이 두 겹이었지만, 그 너머로 아버지의 눈빛은 언제나 쨍하고 뾰족했다.
가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거실에서 TV를 보시다 눈을 감으면, 나는 아버지가 주무신다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눈을 뜨며 단호하게 “안 잔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는 아버지를 대표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무뚝뚝한 표정과 침묵은 익숙했고, 식탁이나 거실에서도 아버지는 말없이 먼 곳을 바라보셨다. 나는 그러한 침묵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여겼다.
그날 저녁도 평소와 같았다. 식사 후, 아버지와 나는 말없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 치우지 않은 접시와 빈 밥그릇이 놓여 있었고, 아버지는 숟가락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낮게 말씀하셨다.
“더 많이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 말이 낯설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버지를 바라보았으나, 아버지는 내 시선을 피한 채 식탁 위의 숟가락만 만지작거렸다. 형광등 아래 아버지 손등의 잔주름이 유난히 깊었고,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오물거렸다.
한 번은 숨바꼭질 도중 안방 장롱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장롱은 아이 둘이 들어갈 정도로 컸고, 짙은 밤색 표면에는 굵은 나뭇결이 또렷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웅크리며 주변을 살폈다. 양복 몇 벌과 낡은 가죽 재킷, 그리고 아버지의 사진첩이 있었다.
나는 사진첩을 펼쳤다. 그 안에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옆집 감나무에서 감을 슬쩍 따먹을 법한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왜 지금은 그런 표정이 없으실까? 왜 그렇게 과묵하실까? 나는 사진을 넘기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마음에도 분명 밝은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 일상은 같았지만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들이 마음에 남았고, 매일 아침 아버지가 건네주던 비타민 한 알과 미지근한 물 한 잔에도 다정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아버지는 계속 그 개조한 안경을 쓰셨다. 그래서 나는 아르바이트해서 아버지에게 새 안경을 사 드렸다. 아버지는 그 안경을 쓰며 작은 미소를 지으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내가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신 듯했다. 아버지는 늘 자신의 것을 조금씩 포기하며 내게 다가오셨고, 나는 그 오랜 다정함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마음은 조용한 노란빛 같았다. 그러나 그 노랑에는 금이 가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아팠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틈으로 더 깊고 진실한 감정이 흘러나왔다. 이제 나는 이 마음을 더 이상 ‘희생’이라 부르지 않고 ‘조용한 노랑’이라 부른다. 금이 가 있고 완벽하지 않지만, 그 균열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고 마음도 선명해졌다.
아버지의 미안함은 억울함이 아니라, 말없이 자리를 비워주는 사랑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눈빛을 기억하며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꿈들을 다시 꺼냈다. 어떤 꿈은 여전히 접혀 있었고, 어떤 꿈은 조금씩 빛을 받기 시작했다. 금이 간 노란빛 사이로 또 다른 마음이 천천히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