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은 불을 끄지 않는다 - 11편
샤워를 마친 H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불이 꺼진 방안은 컴컴했다. 암막커튼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옅은 달빛이 암흑의 일부를 조각내며 방안으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H는 그저 죽은 듯이 누워있을 뿐이었다. 죽을 듯이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았다. H는 아까 화재현장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흐릿한 막에 갇힌 듯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출동할 때 무슨 차를 타고 갔었는지 누구랑 같이 갔었는지 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이게 뭐지? 왜 기억이 하나도 않나지? 무언가 생각 날듯 말 듯잡히지가 않네.사이렌 소리, 산소마스크, 짙은 연기, 화염, 창문... 창문? 무슨 창문이었지? 누구가 카지노 가입 쿠폰는데? 왜 생각이 안 나는 거지?'
"빼"
희미하게 귓가에 누군가 속삭이듯 말했다.
"뭐야?"
H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H는 뒷목에 소름이 서늘하게 돋았다. 뒷목의 소름이 어깨를 타고 두 팔까지 내려왔다.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 침대에 누웠다.
"빼!"
다시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H는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무언가에 눌려있는 듯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숨마저 가빠왔다. H는 일어나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는생각이 들었다.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특히 팔뚝에 심줄이 터질 듯이 퍼렇게 솟아났다. 멈춰있던 손가락에 힘이 조금씩 들어가고 카지노 가입 쿠폰. H는 이번에 일어서지 못하면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이란 공포가 전신을 지배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렇게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 돼'
H는 죽을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H는 컨테이너 앞에 서있었다. 연기로 가득 찬 검회색의 공간, 불기에 휩싸여 타들어가는 컨테이너, 화염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불덩어리가 되어가는 남자 그리고 나를 증오스럽게 쳐다보는 하나 남은 눈. 눈이 H에게 다가왔다.
"살인자"
단조롭지만 고통이 가득 배어 나오는 목소리가 찐득하게 H의 귓가에 달라붙는다.
"아니 난구원자야. 넌 천사가 아니었기에 구원을 못 받은 것뿐이야. 난 천사의 탈피를 돕는 이 세상의 구원자라고"
H는 소리 높여 변명했다.
'그런데... 그런데 왜? 왜 나는 구더기를 보고도 그렇게 흥분했던 거지? 그때의 감정은 뭐였지? 희열감. 희열감이었어. 아냐 그건 말이 안 돼. 어째서 그런 감정이 들 수 있지? 난 그래서는 안 되는데. 난 구원자라고 구원자란 말이야"
H의 머리는 혼란으로 가득 찼다.
'오피스텔의 그녀를 봤을 때도 남자를 봤을 때도 몸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흥분과 황홀감에 주체할 수가 없었어. 천사가 아닌 것을 분명히 알고 카지노 가입 쿠폰는데도 어째서? 불 자체에 흥분한 걸까? 아니면 죽음 자체에? 아니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그건 절대 아니야 아니어야만 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부정하였다. 심하게 머리를 흔들다 고개를 든 순간 빨래건조대에 걸려있는 방화복이 보였다. H가 또 한 번의 분출로 소방서에서 세탁하기 어려워 집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바지의 자크가 열린 채 쩍 벌어져있는 모습에 H는 마치 자신의 하체가 벗겨진 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무언지 모를 흥분이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남자를 보면서도 난 분명히 흥분했었어. 내 마음을 속일 수는 없어. 그래 황홀감이었어. 지금처럼 몸속의 모든 것이 용암처럼 타 올랐어. 몸속에 숨어있던 내 본능이, 내 욕정이, 내 숨겨진 본능이 머리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어. 그래 난 불에 타 죽는 사람들을 보며 흥분했던 거야. 난 구원자가 아니라 살인자야. 사람이 타 죽는 장면을 보며 희열을 느낀 거야. 지금도 봐 음탕함에 터질듯한 내모습을'
H는 터질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바지 속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쾌락의 끝을 쫓아 달렸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미친 듯이 달려갔다.
광란의 시간이 지났다. H는 울고 카지노 가입 쿠폰. 끊임없이 눈물이 났다. 미친 듯이 허무했다. 서럽고 서러웠다. 마치 어린 시절 비닐하우스 밖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웃고 있다.
엄마는 웃고 카지노 가입 쿠폰.
엄마는 웃고 카지노 가입 쿠폰나?
엄마는 웃고 카지노 가입 쿠폰었나?
엄마는.....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빠져나가고 카지노 가입 쿠폰. 가슴에 구멍이 뚫려 그 구멍으로 하얀 무언가가 쉴 새 없이 흘러나가고 카지노 가입 쿠폰. H는 그 가슴의 구멍을 손으로 막았다. 분명히 손이 구멍보다 몇 배나 컸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제 다 나왔다고 생각되는 순간 무언가 큰 것이 턱 하고 걸렸다. H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구멍에 걸려나오지 못한 그 어떤 것이 마구 버둥거렸다.
H는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왼쪽 가슴 바로 위에 작은 구멍에 하얀 무언가가 실타래처럼 얽혀 나오고 있었고 가슴은 크게 부풀어 카지노 가입 쿠폰.속에서 무언가 큰 것이 나오지 못하고 작은 구멍을 마구 헤집고 카지노 가입 쿠폰. 가슴이 아프다. 찢어질 듯 아프다. H는 견딜 수 없는 아픔에 실타래를 두 손으로 잡고 잡아당겼다. 조그맣던 구멍이 점차 크게 벌어지고 있다. 가슴에 가로로 빨간 줄이 생기며 조금씩 조금씩 찢어지고 카지노 가입 쿠폰.
H는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온몸이 다 찢어지더라고 가슴속에 있는 것을 꺼내버리고 싶었다. 가슴속에서 계속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서 빼줘. 날 빼줘. 어서 빼줘. 빼줘. 빼줘"
높지 않은 나지막한 소리가 귓가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울렸다.
"빼줘. 꺼내줘. 빼줘. 빼! 빼! 가슴을 찢어서라도 얼른 빼!"
목소리는 점차 부탁에서 강요로 바뀌어 버렸다.
"빼! 빼! 빼! 빼! 빼! 빼!"
북소리처럼 H의 달팽이관을 맴돌며 집요하게 명령하고 카지노 가입 쿠폰.
"아악! 그만 알았어 뺄게, 알았어 뺄 거야, 뺄게"
H는 좌우측의 달팽이관 벽에 부딪치는 메아리 소리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아아아악!"
H의 단말마와 함께 가슴이 가로로 찢어지며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카락이다!
흰머리가 드문 드문 섞여있는 꼬부랑 파마머리카락이다!
서너 개의 주름이 가로로 선명하게 보이는하얀 이마다!
그리고
눈!눈알이 나왔다.
한 눈은 불에 검게 그을리고 불타버려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한 눈은 증오를 한가득 담고 나를 바라보며 나오고 있다.
컨테이너에서 보았던 그 눈이다.
한 번도 깜빡이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다시 구멍에 걸리 듯 움찔거리며 못 나오고 있다.
코가 보이기 시작했다.
코에는 진득한 피가 묻어카지노 가입 쿠폰.
H는 온전한 얼굴이 다 나오기를 기다리고 카지노 가입 쿠폰.
그것의 귀가 가슴에서 빠져나오자 '퍽'하는 소리와 함께 H의 발아래로 떨어져 몇 바퀴 뒹굴렀다.뒤통수가 보인다.머리카락이 뒤덮고 있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H는 허리를 숙이고 한 손을 내려 그것을 잡아 올리곤 머리를 뒤로 돌렸다.서서히 머리가 돌아가며 코가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검게 그을린 눈이...
코 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카지노 가입 쿠폰. 윗입술의 아주 일부분만 검게 탄 채 오물오물 거리며 코 밑에 달라붙어 카지노 가입 쿠폰.
"어.. 엄..마? 엄ㅁ마?"
꿈속에서 보았던 엄마의 잘린 얼굴이었다. 아래 입술이 없는 데도 엄마는 계속 말을 하고 카지노 가입 쿠폰.
"빼줘!. 빼줘! 날 여기서 빼줘!"
얼굴은 기괴한 소음과 함께 악마 같은 얼굴을 하고 화염덩어리가 되어 H에게로 달려들었다.
"아아악!!!"
H는 소리를 지르며 두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부실한 창호 때문에 차가운 겨울바람이 살살 들어왔다. 팔락이는 암막 커튼 사이로 햇빛이 반짝거렸다. 핸드폰은 목이 터져라 울어재끼고 카지노 가입 쿠폰. H는 깨질 듯한 머리를 간신히 일으켰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볐다. 침대 옆에 던져져 있는 핸드폰을 잡아 들었다.
"야~! 너 뭐 해? 어디야? 지금 몇 신지 알아? 출근 안 해?"
소리가 귓속에서 웅웅 울린다. 알아들을 수가 없다. 성중이인 것은 알겠는데 뭐라 그러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눈이 떠졌다. 주변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집이야~! 늦잠 잤나 봐. 얼른 정리하고 나갈게"
"어휴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지금 열시다 열 시. 오전 다 까먹고 늦잠 잤다고? 너 팀장이 오면 시말서 제출하라고 지랄지랄 하더라"
"내야지 뭐. 어쩔 수 없지. 얼른 갈게"
성중이는 전화로 난리 친 게 조금 미안했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조심해서 빨리 와"
'조심해서 천천히 와'도 아니고 '빨리 와'란 말에 H는 순간 피식 웃음을 짓게 했다.
"그나저나 이거 난리도 아니네"
H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것은 고사하고 침대는 소변과 분출물로 매트리스 속까지 흠뻑 젖어카지노 가입 쿠폰. H가 길게 한숨을 내뱉고 정리를 위해 일어서는 순간 가슴에 깊은 통증이 왔다.
"헉~! 뭐지? 갑자기 가슴이 왜 이렇게 아프지?"
H는 옷을 벗고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왼쪽 가슴에서 가슴 중간 부분까지 붉은색의 상처가일자로 진하게 새겨져 카지노 가입 쿠폰. 손톱으로 천천히 그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굵은 실선 사이에 점선이 드믄드믄 찍혀카지노 가입 쿠폰. H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았다. 어느 손에도 피가 묻어 있지는 않았다. 꿈이 생각났다. 엄마 얼굴이 나왔던 곳이었다.
H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찢어지거나 파이지는 않고 피부 겉 부분만 긁힌 상처였다. H는 그것이 엄마의 계시라고 생각되었다.
'그래 엄마가 천사가 되어 내 안에 있었던 거야. 내가 의심해서 꿈속에서 나를 다시 깨우쳐 주신 거야. 그럼 그렇지 나는 구원자였어. 나는 구원자일 거야. 정말 그렇겠지? 그런데 왜 빼달라 그랬던 것이지? 그리고 결국 내 몸에서 나오기도 했고? 나를 버린 것일까? 아냐 아냐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려준 것이야. 그래 그뿐이야.'
그나마 12시가 되기 직전에 간신히소방서에 도착하였다.
"마~! 이제 나왔냐? 뭔 일 있어? 이거 이거 눈이 아주 쏙 들어갔네? 너 진짜 뭔 일 있냐? 어디 아파?"
H가 출근하자마자처음 맞이해 준 것은 동기인 성중이었다.
"몸이 많이 지쳤었나 봐. 정신을 잃었었어. 팀장님 화 많이 나셨냐?"
"진짜? 지금은 좀 괜찮냐? 뭐 약이라도 먹었냐? 의무실에서 좀 가져다줘?"
"아냐. 이제 괜찮아. 푹 쉬었더니 좀 나아졌어"
그때 팀장이 급하게 사무실로 들어왔다.
"H! 너 어제 혹시 컨테이너 쪽에서 사람 못 봤어?"
"아뇨. 연기도 짙었고 불이 붙기 시작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누가 카지노 가입 쿠폰습니까?"
"그래 못 볼 수도 카지노 가입 쿠폰겠지. 거기가 휴게실이었데.사장이 거기서 자고 카지노 가입 쿠폰데. 완전히 타버려서 시신도 온전하지 않아"
"그렇습니까? 휴~! 제가 조금만 더 자세히 살폈으면 구할 수도 카지노 가입 쿠폰는데 제 잘못이네요"
"그런 소리하지 마라. 불이 확산되고 있었고 연기도 가득했던 상황에서 어떻게 모든 곳을 살필 수 있었겠어? 그 사람 운명이지. 그리고 지각은 이번 한 번만 봐줄 거니까 다음부터는 늦지 마"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을 나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H는 씩 한번 웃으며 자리에 있는 PC의 전원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