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며칠동안 명준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헥토파스칼, 간접영향권, 열대성저기압 등의 단어를 들으며 오래된 식당에서 포구의 음식들을 먹었다. 메스칼을 떠올린 이후로 그 맛이 계속 생각나 이런저런 술을 마시며 밤을 보냈지만, 무엇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긴 어떻게 그 시절의 술맛을 다시 맛볼 수 있겠어?? 술에 취해 그는 생각했다.
김연수 <엄마없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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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밖에 없는 내 남동생에게는 역맛살이 있다. 진짜 사주를 본 건 아니고, 내가 봤을 때 저정도의 방랑벽을 팔자나 사주아닌 다른 개념으로 설명하긴 어려울 정도로 그는 대학생이된 이후로 줄곧 출가생활을 했다. 군대를 포함, 교환학생과 배낭여행, 방학때마다 해외로 떠나던 동시통역 아르바이트까지 따지면 그냥 그는 엄마아빠의 그야말로 '내놓은' 아들이었다. 그러던 동생은 기어이 중국에 주재원으로 취업을 해서 나가더니, 2년만에 가산을 모조리 써버리고 돌아온 탕아처럼 힘없이 컴백했다. 아무래도 사회 초년생에 혈혈단신으로는 타국생활을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녀석도 이제 해외살이가 힘들다는 걸 깨달은 게로군, 이라며 드디어 한국에 정착할 것으로 예측했던 우리 가족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동생은 짐을 꾸려 일본으로 갔고, 거기서 문돌이 팔자에도 없는 반도체회사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렇게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산 게 올해로 9년차니 그는 골프공과 아들은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명언(?)처럼 살아있어서 그걸로 된 아들래미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텀을 두고 한국을 방문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무료 카지노 게임 남매는 피에 술이 잔뜩 섞인 유전자를 사이좋게 나눠가진 동기간답게 반드시 술을 함께 마시는 밤을 하루 이상은 보낸다. 남들은 노래방에서 10만원을 넘게 결제했다고 얘기했을 때의 반응과 비슷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면서 얘기한다.
“도대체 남동생이랑 무슨 할 얘기가 있어?”
그가 이역만리, 까지는 안되어도 해외에서 외국인노동자로 산 기간이 15년여가 되었다는 건, 그러니까 이런 의미이다. 2000년대 초 이후 한국의 음식, 노래, 음주, 유행 등 모든 문화의 영역에 걸쳐 업데이트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는 얘기다. 우리는 무슨 대단한 얘기씩이나 하려고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다. 동생이 세워오는 계획안에 있는 음식들이, 장소와 술들이 우리를 20대 초반으로 돌려보내기 때문이다. 그가 가고싶다고 요청해오는 장소들은 싸다 돼지마을, 신림동 순대타운, 동대문 엽기떡볶이 같은 것들에 쏘맥 한 잔, 이런 식이라 이 나이먹고 그런 데를 가자고 했을 때 응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각자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이를테면, 2002 월드컵 당시 동생은 고3이었는데, 내가 술에 만취해서 우리집 앞의 역에서 나 좀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하면 동생은 공부를 하다가 슬리퍼를 끌고 입으로는 숫자 욕을 하면서 나를 데리러 왔다는 불만, 나는 니가 해외에 나가서 니가 살고 싶은대로 살고 있는 동안 나 혼자서 외동딸처럼 자식 노릇을 하고 효녀 코스프레를 하느라 얼마나 되고 고달픈지에 대한 하소연, 우리가 아빠를 닮아서 술을 좋아하는데 정작 당신은 술을 끊었다는 배신에 대해서, 그래도 이렇게라도 맞는 부분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어 다행이라는 안심, 그러다가 우리 부모님 건강하셔야 하는데에 하는 소망에까지 이르는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
정신이 오락가락 해질때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 동생과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가 유년의 대부분을 보냈던'동네' 라고 부를만한 거리의 아파트들을 차례로 비척비척 지난다. 신축 아파트같은 깔끔무료 카지노 게임 정리된 정원이 아닌, 구축 아파트 특유의 무성무료 카지노 게임 아무렇게나 막 자라 우거지다 못해 기울고 이운, 둥치가 커다란 나무들과 나보다 족히 수십년은 더 살았을 꽃들 사잇길로 집에 걸어갈 때면 그 동네에서 자라는 동안 내가 느껴왔던 안도감과 평화가 다시 느껴진다. 이제는 엄마손을 놓고 무료 카지노 게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시간이 좋다. 밤공기와 어스름한 밤빛을 느끼며 무료 카지노 게임는 마지막으로 술꾼의 아들과 딸 답게 집 근처의 편의점에서 500짜리 캔을 하나씩 더 사서 마신다. 무용한 헛소리들을 하며 술을 마시고 또 걸어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세상 무능력한 어른들의 헛짓거리일 수 있는 그 시간을 아름답게 포장해주는 것은 함께 나고 자란 그와 나의 유년기와, 어느 순간 업데이트가 멈춰버린 한국에서의 옛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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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카지노 게임 넷은 노래방에서 13,5000원을 결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니 사실 40대 이후 다시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고나서부터는 만날 때 마다 노래방에서 10만원이 넉넉히 넘어가는 돈을 매번 결제하고 있다. 물론 음료와 맥주가 포함된 금액이다. 다른 친구 S에게 그 얘길했더니
“혹시, 도우미를 부른건 아니지?”
그럴리가. 노래만 부르기에도 밤은 너무 짧고, 무료 카지노 게임의 혈기는 탱천한다. 음료가 포함이 되었다고 해도 노래방에서 40대 여성 네 명이 결제하기에 터무니없는 금액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게하면 그날 밤의 끄트머리라도 잡고 가느 시간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은 미련한 마음이 이는 것이다.
그 시절을 소환하는 걸로는 노래만 한 게 없다. 어떤 노래는 들으면 그때의 장소와 함께 있던 사람들, 우리가 나눈 대화와 입고 있던 옷, 그날의 날씨와 내 기분까지도 한꺼번에 너나할 것 없이 복원되며 마치 어제의 일이었던 것처럼 선명하고 비비드하게 머리속에서 재생되기도 한다. 노래방에서 우리는 마치 주술을 외듯, 그 때의 기억을 불러들인다. 그러면 그 몇 시간만큼은 시간이 미래로만 내달리는 게 아니라 미래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된다. 그런 착각을 느끼며 과거로 과거로 우리가 시간을 되감아가는 비용으로 10만원은 싸도 너무 싸다.
그 땐 핑클과 S.E.S의 시절이었고, H.O.T와신화오빠들의 시대였지만, 이제 스물을 넘어선 무료 카지노 게임에게는 그런 오빠, 말고 진짜 오빠. 그러니까 전지현보다 여자친구가 좋은 이유는 만질 수 있어서라던 말처럼 티비속 오빠말고 만질 수 있는 남자친구의 존재가 가장 중요한 때였다. 그런 무료 카지노 게임들답게 애절한 발라드나 슬픈 이별노래에 지나치게 몰두했고 감정을 대입했다.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이나 <그남자, 그여자 같은 노래들을 들으면 흔하디 흔한 무료 카지노 게임의 연애는 천년의 사랑이 되었고 무료 카지노 게임의 이별은 하늘이 갈라놓은 비련이 되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사실은 성마른 연애를 반복하는 어린 여자애에 불과했지만 <행복한 나를 을 들으면서 딴에는 성숙한 사랑을 하는 어른 여자가 된 줄로 착각하기도 했었다. 그런 허영심과 착각들이 빈틈을 보이며 쌓여갈 때, 나는 서서히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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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자주 가게된 양재천 근처의 LP바가 있다. 남편이 내가 딱 좋아할 것 같다며 가보자던 그 곳은 내가 숱한 밤을 보내던 홍대앞의 바와 매우 흡사했다. 음주에 많은 돈을 쏟아붓느라 늘 가난한 대학생이던나는 국산 병맥주를 2,500원에, 기본 안주인 마른멸치와 땅콩을 무한정 먹을 수 있던 그곳을 사랑했다. 낡을 주택을 개조했던 그 펍은 2층이었는데 화장실에 가려면 곡예라도 하듯 삐걱이며 아래가 훤히 뚫린 계단을 층층이 밟고 올라야 했다. 그 때 내가 거기서 만취하지 않았던 건, 전적으로 그 화장실앞에서 정신을 부여잡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만원으로 값싼 맥주 네 병에 고추장 찍은 멸치를 우물우물 씹으며 무료 카지노 게임는 결코 값싸지 않은 꿈을 꿨었다.
남편과 나는 양재천의 LP바에서 이정봉의 <어떤가요 를 신청곡으로 써내고 마르고 짠 멸치대신 부드럽고 고소한 한치를 안주삼아 한 병에 1,3000원짜리 이네딧 담을 마신다. 남편과 나는 물론 동상이몽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어떤가요라는 노래를 안주삼아 홍대를 들락거리던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그때의 나와 나를 둘러싼 시간들, 그곳에서 두 눈을 반짝이며 수많은 밤을 보내던 발그레한 볼을 가졌던 그녀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아무리 분위기가 닮은 LP바에서 술을 마셔도 그 맛은 이미 예전에 홍대에서 맛보던 그 맛이 아니다.
김연수의 소설속 명준이처럼, 언제 다시 마시더라도 그 시절같을 수는 없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그 시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때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무료 카지노 게임 있는 것이 숭고한 사랑이었다는 허영과 착각의 시간을 지나, 고3인 동생을 역으로 불러내어 2002년 월드컵의 분위기를 강제체험시키던 악랄한 누나의 시기를 거쳐,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버티던 계단을 조심조심 오르던 나를 건너, 오늘이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일이 온다. 멋드러지고, 기대되는 내일은 아니더라도, 낙관이 없더라도, 내일을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는 게 맞다. 지난간 시간, 거쳐간 사람, 스쳐간 사건은 잊는 게 인간의 생존과 진화에 유리할진대 자꾸만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는 것, 그럴 때 마법사의 물약처럼 술이 필요한 것은 100세 시대의 인간에게 청춘이란 지나치게 유한하고 짧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는 미화되고 대과거는 윤색되어 새로 태어나는 만큼 청춘은 시간은 지날 수록 더 아릅답고 더 빛이 난다. 그래서 저마다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포장지로 청춘을 싸서 보관하다가 힘들 때, 지쳤을 때, 그리울 때, 가끔씩 그 포장지를 풀어본다.
그게 무료 카지노 게임없는 내일에 유일한 위안일 때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애주가들은 그걸 술과 함께 함부로 애틋하게 펼쳐본다. 그럴 때 술은 내일을 위한 연료가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