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설렁 살래요, 날갯짓 안 하는 매처럼.
식사를 마치고 차에 타는데, 우기가 우리를 불렀다. 우기가 가리킨 하늘에는 큰 새가 날고 있었다. 빙글빙글 돌며 땅과 하늘을 오가는 모습에 독수리인가 싶었는데, 신비가 매라고 가르쳐줬다. 매를 이만큼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매는 몽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라고 했다. 그 말 그대로, 우리는 여행 내내 매를 볼 수 있었다.
매뿐만이 아니었다.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초원에는 생기가 돌았고, 그 주변을 노니는 가축들이 많아졌다. 옥스포드 블록처럼 매끈 보송한 소들과, 항문을 쏙 가리는 방석 같은 꼬리를 가진 염소와 양들이 길 건너 친구들 하듯 도로 양쪽 초원을 오가며 풀을 뜯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 차가 도로가에서 풀을 먹는 가축 주위를 빠르게 지나가는데도 가축들은 차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길을 건너다 차가 지나가면 익숙하게 자리를 비켜주거나, 클락션을 울릴 때까지 느릿느릿 움직였다. 초원에는 그늘을 만들 나무가 하나도 없었는데도, 습하지 않아 볕이 덥지 않았다. 구름이 그림자를 만들면 가축들은 구름 그림자 안에서 풀을 뜯었다. 그렇게 온전한 구름의 그림자를 본 것도 처음이었을 거다. 그림 같았다.
다만 오프로드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우리 차는 운전석까지 7인승이라, 운전사 바여라와 가이드 투메를 제외한 우리 다섯이 돌아가면서 안전벨트 없는 뒷좌석 가운데에 앉아야 했다. 가운데 앉는 사람은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는데, 첫날 당첨자는 나였다. 고속도로 없는 강원도 산길에 익숙한 나는 울퉁불퉁한 몽골 도로도 괜찮을 줄 알았다. 차가 도로 밖으로 나가 초원을 달리기 전까지는.
푸른 초원은 평지처럼 보였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가 도착하기 전 이틀간 비가 내린 상태라 물길이 나 있었다. 물은 짧은 풀이 자란 땅을 가르고 길을 만들었다. 심지어는 그 물길이 개울처럼 모여 콸콸 흐르기도 했다. 초원에도 얕은 바퀴자국이 나 있는 걸로 보아 관습적인 길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위에 난 물길 때문에 바퀴자국을 따라갈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벤의 리듬에 맞춰 힘없이 흔들렸다. 양옆에 앉은 손이와 야호의 어깨에 머리를 부딪혀가면서 덜컹덜컹 움직였다.
다행히 운전사 바여라는 차를 세 대나 보유한 프로 운전사였다. 바여라는 멀리서 길을 보고 물길을 피해 운전할 줄도, 개울이 보여도 땅의 곡면을 살피며 깊이를 가늠할 줄도 알았다. 물을 마시려고 개울에 모인 가축들의 다리가 잠긴 정도를 보고 깊이를 파악하는 방법도 있었다. 바여라 덕분에 차는 구불구불하지만 착실히 카지노 게임 추천의 목적지로 나아갔다. 질러가는 게 가장 빨라 보이는 초원에서도, 가장 빠른 길은 돌아가는 길이었다.
우리의 몽골 여행 첫날 목적지는 쳉헤르 온천이었다. 쳉헤르 온천은 하나의 장소가 아닌, 유황 온천수를 뿜는 온천 지역이다. 계곡을 따라 10~20동의 게르로 이루어진 캠프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우리 숙소는 계곡 경사면 중간쯤에 위치한 캠프였는데, 캠프 울타리 밖에서는 염소와 양, 소들이 풀을 뜯으며 계곡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들은 전부 매였다. 하루 전에 큰 비가 와서인지, 8월 성수기임에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눈으로 어림하기에 쳉헤르 온천에는 사람보다 동물이 더 많았다. 최고였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배정된 게르로 짐을 옮겼다. 동그란 게르 천막 안에는 두꺼운 천으로 덧댄 벽을 따라 침대가 둥글게 놓여 있었다. 게르 가운데에는 난로와 이어진 굴뚝이 있었는데, 바깥은 이 난로를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따뜻했다. 침대는 울란바토르 숙소처럼 엉덩이가 쑥 빠질 정도로 꺼져 있었지만, 예상 못한 건 아니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침대 위에 준비해 온 침낭을 폈다. 카지노 게임 추천가 할 일은 그게 다였다.
저녁 시간은 일곱 시. 그때까지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는 네다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해는 아직 중천에 있었고, 핸드폰만 하며 누워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야호와 손이와 나는 게르 밖 동물을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강원도에서 사는 동안 몇 번 양 떼 목장은 가봤어도, 우사 주변을 지날 기회는 있었어도, 이렇게 넓은 곳에서 지내는 동물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동물들은 흙투성이였지만 이상하게 뽀송해 보였다. 똑똑한 흑염소들은 땡볕을 피하기 위해 키 큰 친구의 그림자에 숨어 풀을 뜯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는 조금 더 동물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슬금슬금 따라갔다. 가축떼는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내게 남은 건 가축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쓸린 풀독뿐이었지만, 그래도 카지노 게임 추천 사이의 거리를 동물이 정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그렇게 느긋하게 동물을 따라다녔는데도 저녁 시간까지는 한참 남아 있었다. 온천욕을 할까 했는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가 빼면 배가 고플 것 같아 밥 먹기 전으로 미뤘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시간이 많았다. 뭘 해야 하나 싶었다.
몽골에 오기 전, 야호가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피곤한 상태에서 온천에 들어가면 죽는대.”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앞뒤 맥락을 싹 뺀, 정말 야호다운 이야기였다. 어떻게 생긴 사건인지, 어떤 환경에서 벌어진 일인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뭔가 더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궁금증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그만큼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몽골에 갈 시간을 내기 위해 내리 야근을 하던 나날이었다.
굳이 몽골 핑계가 아니더라도, 회사에는 늘 일이 많았다. 일정 맞춰 발행해야 하는 콘텐츠 특성상 일정을 당기기 위해 탄력 있게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탄력 있게 일하다 보면 일이 늘어날 때도 줄어들 때도 있어야 하겠지만, 이상하게 일은 늘기만 하고 줄지는 않았다. 정말 대단한 미스터리였다.
주말에 시간이 남으면, 카지노 게임 추천 침대에 죽은 듯 누워 잠을 잤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지만 출근 시간에 눈이 떠졌다. 그렇게 눈을 끔뻑끔뻑하다가 보면 다시 잠들어 열 한시. 다시 끔뻑끔뻑하다가 잠들면 두시.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네시였다. 푸지게 잠을 자고 나면 맵고 헤비하고 기름진 한 끼를 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누웠다. 수명 깎는 습관이라는 건 알았지만, 수면 부족으로 방전된 내게는 확실한 급속충전 방법이었다. 나한테는 그런 기본적인 재충전이 너무 필요해서 다른 것들은 다 뒷전이었다. 친구들을 만카지노 게임 추천 일이나, 혼자 좋은 장소에 가서 건강한 시간을 보내는 일들.
급속충전을 하면서도 나는 약간의 카지노 게임 추천 느꼈다. 죄책감의 대상은 바로 나. 회사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게 싫어서 쉬는 날 생산적인 일을 해보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몸은 충전이 필요했으니까. 무선충전 하듯 침대에 갇혀 나는 흐르는 시간을 아까워하기만 했다. 열심히 일한 만큼 행복해지면 좋을 텐데, 왜 점점 빨리 닳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닳았다는 말은 진짜다. 잠을 못 자면 뒤통수가 순간 저릿했다.
그래서, 야호의 이야기에 다른 물음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그 텍스트가 그대로 내 미래처럼 느껴졌다.
“피곤한 상태에서 온천에 들어가면 죽는대.”
그 피곤함의 정도가 얼마만큼인지는 몰라도, 뒤통수가 저릿할 만큼 피곤한 사람이라면 온천에 들어가서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첫 목적지가 온천이라니! 나는 뒤통수가 저릴 때마다 야호에게 장난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했다. 나 이러다 여행 첫날에 죽는 거 아니야? 그럼 너무 아까울 텐데….
그렇게 온 몽골이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 마음이 들려고 하던 차에, 야호가 흔들의자를 발견했다. 흔들의자는 게르 캠프 앞 계곡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었다. 흔들의자에 앉으니 아까 우리가 따라다니던 가축떼가 무리 지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가축떼와 점점이 늘어선 게르 캠프. 그 외의 것들은 온통 푸르른 초원과 산, 하늘이었다. 초원은 푸르고 하늘은 파랗고 매는 구름을 가르며 날았다. 계곡이 깊어서인지, 매는 우리 눈높이에서 날았다.
비둘기가 걷는 이유는 카지노 게임 추천 게 힘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새들은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작은 몸을 띄우기 위해 날개를 펄럭이는 데에 드는 에너지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가볍게 포르르 날아다니는 새들도 사실은 죽기 살기로 날개를 움직이는 거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니까 괜히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더랬다.
그런데 정작 매는 그렇게 열심히 날지 않더라. 매는 날개를 퍼덕이는 대신, 날개를 활짝 펴고 바람을 받아 활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비닐 가오리연에 그려진 독수리 같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독수리 연이 아니라 매 연이었을 수도 있겠다.
매는 날갯짓 없이 공중에 머무르다가, 빠르게 땅으로 내려가 무언가를 낚아채 올라왔다. 땅에서 돌아다니는 쥐나 다람쥐를 잡는 거라고 투메가 알려줬다. 누군가는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으로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에서 매의 목표 지향성을 느끼겠지만, 카지노 게임 추천 매가 날갯짓 없이 하늘에 머무르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다람쥐를 잡기 위해, 날갯짓을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내가 편한 방법으로 하늘에 머무를 수 있다면, 날개를 퍼덕거리던바람에 몸을 맡기던 상관없어보였다.
“앞으로 내 롤모델은 매야. 설렁설렁 요령껏 살아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멍하니, 정말 멍하니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격한 액티비티나 화려한 랜드마크가 없는데도 여행을 온 게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쳉헤르 온천 캠프에서는 가만히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전이 되는 기분이었다. 생산적일 필요 없이, 나는 그저 흐르는 시간을 놓아 보냈다.
그동안 야호는 게르로 뛰어가 핸드팬을 가져왔다. 야호가 핸드팬을 두드리자 익숙한 금속음이 계곡을 울렸다. 익숙한 연주 덕분에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곳에서도 낯설다는 이유로 미처 내려놓지 못한 피로가 녹기 시작했다. 마음에 평안이 오자 사르르 잠이 왔다. 나는 맥없이 눈을 감았고, 눈을 떠보니 핸드팬 받침용 담요를 덮고 있었다. 내가 자는 동안 야호와 손이는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고 했는데, 나는 그 대화를 듣지도 못했을 만큼 단잠을 잤다. 이제 온천욕을 할 시간이었다.
온천수에는 유황 성분이 있어 물 가까이 가자 계란 냄새가 났다. 나는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온천에 발을 담갔다. 다행히 죽지 않았다. 핸드팬 연주를 들으며 기절잠을 잔 게 도움이 된 걸지도 몰랐다. 날벌레들도 뜨끈한 온천이 좋았는지, 물 표면에는 계속 벌레 시체가 생겼다.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 손이는 벌레가 우리에게 닿지 않도록 온천 밖으로 쳐 넘겨줬다. 정말이지 손이는 멋진 동행이었다. 낯선 곳에 있다는 긴장도, 낯선 사람들과 있다는 긴장도, 유황 온천의 열기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오랜만에 하는 온천은 좋았고,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자주 온천에 들어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온천이 어렵다면 사우나라도. 그리고 이렇게 마음 놓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기 위해, 나는 조금 더 쉬엄쉬엄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협곡에서 바람을 안고 카지노 게임 추천 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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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욕이 끝나고 샤워를 하는데 샤워기에서 나온 물에서도 꼬릿한 유황 냄새가 났다. 유황 냄새를 폴폴 풍기며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온천 앞에 붙여놓은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몽골어, 중국어, 영어로 온천 주의 사항이 적혀 있었다. 그중 이런 항목도 있었다.
[음주 후 온천욕을 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온천을 즐기려면 주의할 게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