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서 오는 압박감을 내려놓는 법
집에서는 장녀지만, 사회에서는 늘 막내를 도맡았다. 대학생 때도 졸업 때까지 복학생이나 대학원생 선배들과 조별과제를 해왔고, 사회에서도 이상하게 속하는 곳마다 나이가 가장 어렸다. 가장 마지막 회사에서도 직급은 높았지만, 나이는 가장 어렸다. 나이가 어려 생기는 불편함은 겪었어도, 연장자가 져야 할 책임이나 위치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다. 그런 걸 일부러 찾아지고 싶지 않기도 했고.
첫 직장 팀장님의 말이 아직도 생각난다. 밥도 음료도 너무 많이 사주셔서 감사의 의미로 음료를 사려고 했는데, 막내는 카드를 꺼내는 게 아니라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MZ 하지 않은 말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말을 시작으로 내 사회생활은 수많은 선배들의 밥과 음료, 간식으로 풍족해졌다. 나이 어린 막내로서 지금까지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다 나를 키워준 좋은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연장자라는 용어가 어렵다. 한 번도 되어보지 못한 거지만 용어가 주는 무거움이 있어서. 내가 살면서 봐온 연장자, 선배들이 가지고 있던 책임감과 능력에 비해 아직 나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 마음은 나이로도 이어져 왜 내가 벌써 서른이 되어야 하는지, 왜 아직도 어린이 같은 내가 이만큼의 책임을 지고 일을 해야 하는지, 괴리감이 들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쌓아 올리고 있는지, 또 어떤 생각으로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공감할 때도 있지만, 가슴이 무거울 때는 그 모습이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찾아 나와 비교하며, 끝내는 나이듦을 뒤쳐짐과 같이 받아 들이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꼰대’가 다 된 건가, 스스로를 돌아보곤 한다.
어느 8월의 울란바토르, 카지노 쿠폰는 새벽 세 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호텔 주차장에는 어제 카지노 쿠폰를 호텔로 데려다준 투메와 다른 두 사람이 카지노 쿠폰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중 단단한 어깨를 가진 중년 남성은 바여라, 카지노 쿠폰 여행의 운전을 맡아주실 기사님이었다. 바여라는 한국에서 일한 기간이 길어 한국말을 잘하신다고 했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푸르공과 스타렉스, 벤을 사서 여러 여행의 기사 일을 하고 계시다고. 다른 한 명은 카지노 쿠폰 여행의 동행장, 신비였다. 나는 신비를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야호는 내가 나가지 못했던 여행 전 한국 동행 모임에서 이미 신비를 만난 적이 있었다. 카지노 쿠폰는 인사를 나누며 짐을 바여라에게 맡겼다. 바여라는 카지노 쿠폰 짐을 벤 위에 실어주셨다. 야호는 핸드팬을 안고 차에 탔다.
몽골을 딛기 전,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찜찜함은 신비였다. 우리가 신비를 여행사 바이럴 마케팅 직원이라 의심했던 건 신비의 복붙 여행 동행 모집 때문이었다. 신비가 여행사 직원일까, 아닐까. 야호가 신비를 만나고 와서도 긴가민가 했던 이 사실은 정작 밴을 타고 공항에 가는 40분 동안 사르르 사라졌다. 신비는 그냥 몽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동행장 신비가 몽골을 얼마나 좋아하냐면, 뉴질랜드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서 서울에 휴가 내고 온 사이 몽골에 올 정도였다. 첫 번째 여행인 고비 사막이 너무 좋아서 두 번째로 우리와 자브항에도 가고, 세 번째로는 홉스골 호수까지 가겠다는 신비였다. 휴가 기간 동안 어렵게 한국에 왔을 텐데, 신비는 한국에 머무르는 기간보다 몽골에서 여행하는 기간이 더 길었다. 신비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고, 몽골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쌓였다. 대체 몽골의 매력이 뭐길래 재외 동포가 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가?
아무튼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몽골에 올 수 있게 되었으니. 우리는 투메의 아내가 만들어줬다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카지노 쿠폰는 손이와 우기를 픽업했다. 손이와 우기는 둘 다 딴딴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손이는 한국에서 사전 모임으로 신비와 야호를 만난 적 있었지만, 우기는 여행 마지막에 합류하느라 모두가 초면이었다. 적어도, 나만 일행이 낯선 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지노 쿠폰의 벤은 어색한 다섯을 모으고 첫 번째 목적지로 달렸다.
낯선 이들과의 새벽 이동은 잠으로 보내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이곳은 몽골이었다.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잠들지 못한 우리는 조금씩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차 안 분위기가 말랑해지는 데에는 손이의 역할이 컸다. 손이는 가장 옆에 앉은 내게 붙임성 있게 말을 걸었다. 천성이 깔깔이인 나는 손이의 이야기에 맞춰 깔깔 웃었다. 덕분에 앞으로 매일 이어질 몇 시간의 운전 강행군이 두렵지 않았다. 이렇게 사교성 넘치고 애교 많은 손이가 전직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어찌나 놀랐던지. (이 이야기는 차차 풀 예정이니, 궁금하면 매주 찾아와 주시기를!)
분위기가 말랑해지고 난 후, 카지노 쿠폰는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 이름은 <2개의 진실과 1개의 거짓. 문제를 내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명제 세 개를 말한다. 문제를 푸는 사람들은 그 세 개의 명제 중 거짓을 맞추면 된다. 꽤나 미국 술게임 같은 이 게임은 신비가 직접 챗GPT에게 추천받아온 것이라고 했다. 카지노 쿠폰에게는 벌칙으로 서로에게 던질만한 것들은 없었지만, 앞으로 7박 8일을 함께할 서로를 알아가기에는 딱 알맞은 게임이었다.
어색할 것만 같았던 게임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흘러갔다. (나를 포함해) 우리 동행들 모두 평범한 인상이 아니라서 더 그랬다. 실제로 명제를 주고받으며 알게 된 우리는 정말 몽골이 아니라면 만나기도 어려웠을 만큼 다른 레이어의 삶을 살았더랬다.
뉴질랜드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신비. 전직 군인 손이. 크로스핏 선수이자 트레이너 우기.거기에 환경 운동가 야호와, 콘텐츠 PD인 나까지.
남들이 보면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야호와 내 삶 사이에도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이 있다. 하물며 신비와 손이와 우기의 삶은 곁에서라도 지켜본 적 없는 것이었다. 닿아본 적도, 또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삶. 그래서 나와 시간을 보내게 될 동행들이 더 궁금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렇게 다양한 레이어의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회사와 집만 오가고 있기도 하고, 친구들도 비슷한 결의 사람들만 주변에 남기도 했고. 내가 바라보며 질투하고 부러워하고 속상해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내가 잘 아는 결의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동행들은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동행을 만나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낯선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내가 이중 나이가 가장 많다는 걸 아니까 그런 부담이 생겼다. 그래봤자 한 두 살, 많아야 다섯 살 차이 가지고 왜 그러느냐 싶겠느냐마는…
나는 가끔 나이에서 오는 책임감을 느낀다. 그건 사회적으로 각인된 것이기도 하고, 내 선배 혹은 상사들이 경험하게 해준 것이기도 하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뒤쳐진다, 하는 그런 부담이기도 했다. 어른이라면, 상사라면, 서른이라면.
만약 동행 중 조금이라도 나와 같은 레이어의 사람이 있었더라면, 내 어깨는 여전히 무거웠을 거다. 한국에서 느끼던 카지노 쿠폰에서 자유롭기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었다.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이들의 여행을 책임질 필요 없는 것처럼, 이들에게도 내 후배가 되어야 할 카지노 쿠폰이 없다는 게 좋았다.우리 사이엔 사람 사이의 예의나 문화적 존중 외에 어떠한 규칙도 없었다. 그러니까 내 나이가 전혀 걸림이 되지 않았다.
사실, 애초부터 다른 동행들은 나이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이를 신경 쓴 건 나와 손이 뿐이었다. 손이는 한국에서의 모임에서 자기가 막내라는 걸 알고 여행 내내 귀여움 받을 생각에 신이 났다고 했다. 하지만 동행 중 하나였던 손이의 남자친구가 개인 사정으로 여행에서 빠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손이 남자친구 대신 여행 막바지에 합류한 우기는 손이가 그토록 원하던 막내 포지션을 꿰찼다.
막내가 아니라서 아쉬워하는 손이에게 나는 슬쩍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아서 긴장했어. 그러자 손이도 가볍게 말했다. 언니, 어차피 한 두 살 차이인데 뭐. 나는 그 말을 손이한테 그대로 되돌려 줄까 하다가 참았다. 비록 손이는 우리 중 가장 키가 컸고 또 내가 손이랑 싸운다면 백 퍼센트 질 것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딴딴했지만, 그래도 여행 내내 귀여운 막내 같은 역할을 해줬다. 손이 덕분에 여행은 더 말랑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나도 조금 더 마음 놓고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어차피 내 나이는 몽골에서 별 의미도 없었다. 회사에서 연차 쌓은 거? 경력 쌓은 거? 어차피 운전 못하고 몽골어 못하면 몽골에선 말짱 꽝이다. 괜한 부담 이고 지고 할 바에야 헬렐레 노는 게 좋지!
우리의 첫 목적지는 장을 볼 작은 슈퍼와, 그 옆에 딸린 작은 식당이었다. 몽골 여행 경험이 있는 신비와 우기는 맛있는 간식과 술을 골라줬다. 식당은 완전히 몽골 현지 식당이었다. 투메는 몽골에서 가장 일반적인 음식이라며 우리에게 몇 가지 메뉴를 시켜줬다. 우리가 메뉴 이름을 궁금해하자, 신비는 키릴 문자로 적힌 몽골어 메뉴를 읽어줬다. 신비의 몽골 사랑은 몽골어를 읽을 만큼 컸던 것이다. 대단해!
신비는 동행장으로서, 우리의 여행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비록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이 여행을 즐겁게 만들고 싶다는 신비의 포부는 대단했다. 나는 나이에서 오는 부담을 내려놓고, 감사한 마음으로신비의 여행에 몸을 맡겼다. 한편으로는, 신비가 카지노 쿠폰의 여행 만족도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기대를 가늠해 부응하려고 아등바등 하다보면 진짜 즐거움은 놓쳐버리니까.
신비는 우리에게 밥과 함께 수테차를 한 잔씩 시켜줬다. 수테차는 몽골의 전통차로, 소금으로 간을 한 몽골식 밀크티다. 우유로 만든 것이지만 설렁탕이나 사골국 같이 진한 맛이 난다. 우리는 뜨거운 수테차로 건배했다. 여행의 안녕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즐거운 7박 8일을 위해. 슬기가 몽골어 ‘건배’를 알려줬다.
‘덜러!’
그 시간 이후, 우리는 매일 ‘덜러!’를 외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