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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은 Mar 31. 2025

결혼이었으면 이렇게 못살았어요

울란바토르에서 여행 전날 18년 지기 친구랑 싸우는 과정


이쯤에서 내 18년 지기 친구이자, 6년 차 동거인이자, 첫 번째 동행인 야호를 소개를 한다. 고등학생 때 낭만 몽골을 함께 외치던 야호와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다. 대학생 때까지도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다가 끝내는 서울에서 같이 살게 되기까지 했다. 나는 야호와 함께 사는 동안 책도 썼다. 책은 야호와 비건과 논비건으로서 같이 살아가는 내용이었지.


우리는 고향 친구라 우리 부모님도 야호 부모님을 알고, 야호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을 안다. 우리가 서울에서 같이 자취를 하기로 결정한 뒤, 우리 아버지와 야호네 아버지는 같이 술을 드시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딸들이 참 비슷하네요.


그 말처럼, 야호랑 나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닮지는 않았는데 분위기가 유사하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이사 갈 집을 보러 야호가 평일에, 내가 주말에 각각 방문했는데, 우리를 안내해 주신 공인중개사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자매가 하나같이 말을 예쁘게 잘하네요. 어르신들한테 능글싹싹한 부분도 야호와 나의 비슷한 부분이었다. 우리는 이상한 부분에서 무던했고, 이상한 부분에 꽂혔다. 그런 모습이 맞지 않았다면 애초에 몽골에 함께 가지도 않았을 거다.


다만 우리에게는 차이도 있었다. 생활 루틴, 위생 관념, 식습관, 향 취향, 운동 성향, 일하는 성격, 사회생활 방식…. 만약 우리가 방을 따로 쓰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같이 살지는 못했을 거다. 함께 나누고 싶은 재미있고 좋고 맛있는 건 거실에서 함께 나누고, 그렇지 못한 것이나 그러고 싶지 않은 건 방에서 혼자 즐긴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가진 차이 중 가장 명확한 것은 의사소통 방식인데, 간단하게 말하면 말하기 스타일이다. 나는 말이 너무 많고, 무료 카지노 게임는 말이 너무 없다. 나는 머릿속의 생각을 말로 풀어놓으며 정리하는 편이고, 무료 카지노 게임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뒤 말하는 편이다. 나는 과정에까지 이입하는 사람인데 무료 카지노 게임는 명료한 결과만 놓고 보는 사람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내 행동에 서운해하고,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말에 서운해한다. 이런 명확한 차이에 비해 생각보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부딪힐 일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종종 냉전을 겪곤 했다.


이번에 우리가 싸우게 된 건 핸드팬 때문이었다.


핸드팬은 쉽게 말하면 금속으로 된 타악기인데, 접시 두 개를 엎어 놓은 UFO 모양으로 생겼다. 아빠 다리를 하고 두 무릎 사이에 핸드팬을 올린 다음, 동그란 무늬를 손가락으로 통통 쳐서 소리를 낸다. 소리는 철제 드럼 안에서 울린다. 즉, 핸드팬은 사람 한 품보다 더 크고 찌그러지기 쉽다. 몇 년 전 야호는 특별한 사연으로 이 악기를 알게 되었고, 악기 제작자의 워크숍에서 핸드팬을 구매할 수 있다는 소식에 거금을 주고 개인 악기를 들여왔다. 핸드팬은 야호의 보물 중 하나였고, 그런 소중한 물건을 야호는 이번 몽골 여행에 가져왔다.


나도 야호의 핸드팬을 좋아한다. 핸드팬의 음계는 나에게 익숙한 피아노나 기타와는 또 달라서 미묘하게 중독성 있었다. 나는 종종 미스터리 게임을 할 때 야호에게 연주를 부탁했다. 이국적인 핸드팬 소리는 꼭 물음표처럼 둥글거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야호가 핸드팬을 몽골에 가지고 간다고 했을 때 좋다고 했다. 핸드팬의 몽글한 쇳소리가 몽골과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야호는 동행자 모임 채팅방에도 핸드팬을 가져갈 수 있을지 물었다. 안전하게 핸드팬을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악기를 가져갈 수 있으니까. 다행히 우리가 타고 가는 차가 커서 트렁크에 핸드팬을 실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야호는 핸드팬을 몽골에 가져가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몽골에서 발생했다. 가이드 투메가 이런 말을 한 거다.


“트렁크에 자리가 없어서 짐은 다 차 위에 올려야 해.”


차 위에 짐을 올리면 차가 흔들릴 때 짐이 함께 흔들려 악기가 망가질 수 있었다. 악기를 챙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료 카지노 게임가 악기를 안고 타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차는 벤처럼 넓어서 무료 카지노 게임가 악기를 안고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무료 카지노 게임의 악기 예민도는 올라갔다.


야호가 악기 때문에 예민했다면, 나는 그냥 예민했다. 살인적인 야근으로 나는 피곤에 쩔어 있었다. 쉬려고 온 여행에서도 예민기를 다 빼지 못한 상황이었다. 비행기에서 조금이라도 더 잤으면 나았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우리 둘은 펜싱 칼처럼 뾰족해져 있었다. 그 말인즉슨, 조금만 그 끝이 서로를 향하면 파바밧, 찔러버릴 수 있을 만큼 우리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는 거다.


첫 번째 부저는 내가 눌렀다. 우리를 울란바토르 시내까지 데려다준 투메의 차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갔다. 나는 40L 배낭 하나를 맸고, 무료 카지노 게임는 작은 짐을 여러 개 들었다. 손이 남는 사람은 나, 남은 짐은 핸드팬이었다. 별생각 없이 핸드팬을 들고 호텔로 들어가는데 쿵, 소리가 났다. 호텔 유리문에 핸드팬이 부딪힌 것이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조심해 달라고 말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감정이 뾰족, 올라온 게 느껴졌다.


두 번째 부저는 무료 카지노 게임가 눌렀다. 방은 한국 모텔 정도의 컨디션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 이하였다. 하지만 침대 맞은편 TV는 켜지지 않았고, 창문에는 방충망이 없었다. 무엇보다, 더블 침대 한쪽이 푹 꺼져 있었다. 침대에 탁 걸터앉자마자 엉덩이가 프레임에 닿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둘 중 하나는 푹 꺼진 쪽에서 자야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거기서 잘 사람을 결정하자고 했는데, 거기서 무료 카지노 게임의 태도가 날카로웠다. 내가 핸드팬을 부딪혀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나도 뾰족, 감정이 올라왔다.


우리는 서로가 따끔해진 상황에서 울란바토르 시내를 돌았다. 익숙한 곳에서 낯섦을 찾아 헤매며 우리는 모처럼 온 여행을 둥글게 시작하기 위해 애썼지만 낭중지추, 칼끝은 주머니에 숨기기에 너무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우리는 결국 터졌다. 기폭 장치는 나도 야호도 아닌 가이드 투메였다. 투메에게서, 트렁크가 좁아 모든 짐을 차 위로 올려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악기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트렁크에는 핸드팬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했다. 우리가 몽골에 도착하고,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울란바토르 시내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외면하려고 했던 방안의 코끼리… 아니, 방안의 핸드팬은 댕댕댕댕 스스로를 울려가며 끝내 우리가 외면할 수 없게 거대해지고 말았다.


우리는 싸웠다. 핸드팬을 둘러싼 예민과 둔감, 그 주제는 점점 불어나 여행 준비와 앞으로의 일정, 돌아가기까지의 나날들에 대한 것으로 부풀었다. 우리는 싸울 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서로의 말 사이에 침묵을 둔다. 나는 행간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간결하게 말하고, 야호는 상황을 인지시키기 위해 설명을 늘어놓는다. 이 싸움을 하는 스스로의 마음이 불편해 빨리 끝내고 싶어 하지만, 내 상황을 충분히 인지시키기 위해 서로의 발화 스타일로 최대한 납득을 얻어내려고 짱구를 굴리는, 아주 이상한 싸움. 격한 액션이나 고성이 오가지 않아도 야호와의 싸움은 진이 빠진다.


친구와 6년 가까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늘 주변 사람들은 놀란다. 소울메이트냐, 사랑이냐, 영혼의 동반자냐,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는 흘려듣는다. 우리는 비슷한 만큼 다르고, 그래서 일정 부분을 놔버렸다. 우리 엄마도 야호랑 어쩜 그렇게 오래 사냐고, 그 정도면 부부 아니냐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결혼이었으면 이렇게 오래 못 살았어요. 우리는 남이고, 또 서로에게 체념할 수 있다.


납득을 얻어내기 위한 논리(를 가장한 고집) 싸움은 결국 체념으로 귀결된다. 그래, 니가 내가 아닌데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체념은 곧 이해로 이어진다. 네가 예민한 상황이었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규모를 키워가며 부풀던 우리의 싸움은 다시 핸드팬으로 줄어든다. 등에 매면 거북이 등딱지만 한 한 품 안에 들어오는 동그란 UFO, 결국 핸드팬을 잘 가지고 다녀보자, 하고 결론이 났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핸드팬 때문에 나와 동행들에게 예민하게 굴지 않겠다고 했고, 나도 악기와 관련해서는 더 주의하겠다고 이야기했다. 퍽이나 대단한, 싱거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싸움을 끝내고 우리는 짐을 쌌다. 우리의 여행은 새벽 세 시에 시작이었다. 각자 씻고, 국영백화점에서 사 온 자두를 씻고, 컵라면에 부을 물을 끓이기 위해 커피 포트를 씻고, 처음 보는 로고가 그려진 컵라면을 먹었다. 그제야 초등학생 때부터 야호와 알아오면서, 하루 이상의 여행을 같이 온 게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 맛과 다를 바 없는 몽골 컵라면을 먹으며, 우리는 한국에서처럼 싸움을 회고했다.


“여행하는 동안, 다른 애들 앞에서는 절대 이러지 말자.”

“그래, 우리가 나이 제일 많더라.”


먹은 음식을 치우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문득 왜 커플이 여행 기피 대상 1순위인지 알 것 같았다.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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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팬은 우리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으며,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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