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를 표하며
안녕하세요,
'겸재謙齋'라는 아주 멋진 호를 가진 작가님은 이미 아주 오래전 고인이 되셨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많은 영감을 주신 당신께 존경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는한국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논문도 썼지만, 당신에 대해 사실은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었어요.당신은 한국의 실제 풍경인 '진경 산수화'라는 장르를 탄생시켰고 우리에게, 대한민국 후손들에게거대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셨죠.
그런데 제가 이곳에서 당신에 대해 영어로 검색을 했을 때, 위키피디아를 통해 다시 한 번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고 느꼈어요. 서울의 종로에서 태어나셨고,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나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학자(문인)-화가가 될 수 없으셨지만, 여러 길을 돌아 꾸준함을 통해, 결국엔 왕이 하사하는 벼슬을 받는 화가가 되셨죠. 당신은 조선 시대의 위인이셨지만, 저는 한국이 그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달라졌나 생각하곤 합니다. 특히 미술 분야에서요.
한국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학교를 다니며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신이 살아생전 당시의) 문인이자 화가로 가는 하나의 길인 것일까요? 한국에서비싼 등록금과 미대에 가기 위한 준비과정에 드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후원과 믿음이 없다면 화가가 된다는 건, 학자로서의 화가가 된다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죠.
힘들게 졸업한 한국화과 졸업생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제가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한 이론 교수님이 '너희 중에 누가 살아남고 누가 (산) 시체가 될까.'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심한 말로 수많은 시체더미를 보아왔다..'라고 하시면서요. 지금 시대에이 말씀을 하셨다면 논란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요. '살아남는다'는 건 계속 작업 활동을 하는 것이고, 어쩌면 조금은 유명해지는 것이고, 산 시체가 되는 건 붓을 꺾는 일일까요? 힘들어도 좀비처럼 계속 생존하려고 애쓰는 작가들은 시체와 삶 그 어느 중간쯤에 있을까요.
당신처럼한분야에서꾸준히노력하면살아남을수있는걸까요? 제가가르친동양화과학생들중에한두 명만이남아작업을하고있고, 저의동기들중에도소수의친구들만작업을하고또교수가되기도했지만, 아주 작은 퍼센티지라는 점에서여전히이길은험난하다고느껴집니다. 문득대학교 때다른교수님의말씀도생각납니다. 그때제동기 중에90%가여학생들이었는데너희나중에결혼하고그림을접더라도문화센터 가서그림배우지말라고 하셨어요.그땐웃으며말씀하셔서다들웃고넘겼는데전그럴수없었어요. 내가결혼을하면그림을안 그리게되고결국이전공이취미가된다? 그걸하지말라는이유는입시지옥을 지나정말힘겹게여기까지왔는데, 한참 후에그것을또누군가에게취미생으로서배우지 말라는거겠죠. 그 말이 어찌나 슬프게 들린던지요. 그런데 또 지금 생각해 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전공을 했음에도 다시 배우려는 자세가 더 멋진 거 아닌가요.
저는 학자금 대출이라는 시스템과 가족의 후원으로 긴 가방끈을 갖게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은 외국에서 지내고 있어요.전 미대 입시를 할 때 그림그리는 일이 너무 싫었는데, 대학에 와서 산으로 스케치를 다니면서 동양화에 흠뻑 빠지게 되었습니다. 산의 아래와 중간 꼭대기에서 각각 스케치를 하면서 미술시간에 책으로만 배웠던‘삼원법’의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되었고, 산이 없는 지금 여기에서도 삶을 그런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한답니다. 무엇보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곳에 있는 외국학생들에게 한국화의 삼원법을 설명해 줄 때 느끼는 기쁨이 큽니다.
카지노 게임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조선시대의 멋진 화가님을 제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알려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전 박사논문을 쓰면서 제가 조선시대의 문인-화가와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림보다 글을 쓰는 것과 연구하는 것이 더 즐거울 때가 있다는 점에서 그랬어요. 그림을 그리는 일, 저를 표현하는 일에 대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고 좋아하지만, 당신께서 진실된 풍경을 그리기 위해 천문학과 주역을 공부했던 것처럼 저도 공부에 대한 목마름이 있답니다. 조선시대에 학제간 연구를, '학문과 예술의 융합'을실천한 작가님의 열렬한 팬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한국에서 공부를 할 때는 계속 답답함이 들었어요. 제가 사회의 시스템에 잘 들어맞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또 제 안에서 일어나는 반항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연구직은 당시엔 교수가 되는 길이었는데 깊은 공부와 작업이 꼭 그 길을 안내하는 건 아닌 것처럼 보였고,공부보다는 눈치와 사회생활에서 더 높은 능력이 요구되는 것 같았답니다. 작업이나 공부 이외에 더 힘든 길을 통과하기 싫었던 저의 게으른 핑계일 수도 있지만요. 지금은 또 마음이 다른데요. 오래전엔 그랬어요. '내가 떠난다.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공부는 다 한 것 같으니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이 경험하고 돌아온다..' 이런 오만방자한 생각..
이 곳에서 많은 거절과 실패를 경험하면서 저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계속 돌아보게 되는 7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무모하게 계속 도전하며 살아왔어요.실패를 경험이라고 카지노 게임하고 저를 탐험가라고 카지노 게임하면서요. 그런데 탐험가에게도 지도가 필요하죠. 속도는 그렇다 치고 방향을 알고 가야 합니다. 제가 저와 딱 맞는 전공을 찾았는데 그건 제 작업을 프로젝트화 시켜서 리서치를 하는 거예요. 또는 리서치를 프로젝트화 시켜서 작업을 하는 것이죠. 제가 논문을 쓸 때 리서치가 필수였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그 과정을 정말 즐겼기 때문에 전 이 전공이 저에게 딱 맞다고 느끼고 이곳에서 피드백을 받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저는 교수가 되고 싶은 걸까요? 제 경험으로 보아 가르치는 일이 제게 잘 맞고 좋아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제대로 공부해서 한국에 널리 알리고 싶은 걸까요?
아직 먼 미래는 카지노 게임하지 않으려 해요. 우선 제게 주어진 숙제를 풀어야 다음 단계를 카지노 게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은 당신께서 제게 남겨주신 큰 유산이 이곳에서 카지노 게임 공부하고 싶은 방식과 매우 유사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 편지를 시작했는데제 속풀이를 하고 있네요. 당신이 그린 인왕산은 그대로이고, 저는 한국에 가서 그 산을 볼 때 당신이 그린 산을 떠올립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금강산은 당신이 그린 금강산을 보며 상상해 봅니다. 당신의 그림에는 진실이 있습니다. 진실을 마주하려는 생각과 눈이 함께 있습니다. 그 눈을 갖고 싶어서 저는 이곳에 와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고 느끼는 것이 진짜인지 알고 싶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의 카지노 게임과 시스템에 저를 재단하는 제가 싫어져서 이곳으로 도망쳐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반짝이는 호기심과 행복 그리고 매번 실망과 절망을 안겨주는 일.
이일을놓지 못카지노 게임여전히 몽상가처럼살고있는지금
저는 당신의 눈과 귀와 마음과 손을 동경카지노 게임
저도언젠가진실한풍경을그려낼수있기를, 주저함 없이나 자신으로 살아낼수있기를, 공부를통해죽을때까지성장해갈수있기를바라봅니다.
한국에서 또는 어느 곳에서든 당신이 남긴 것들에 대해 상세하고 재밌게 제 경험과 더불어 설명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지금 당신이 계신 곳은 어떤가요.
평안하세요.
*이 편지는 3년 전에 작성했고 오늘 조금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