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천카지노 게임 사이트'에 숨은 진실 (5)
※ 새로운 매거진[중국 여성의 성性과 사랑]을 시작하였습니다. 제1탄은 '측천무후에 숨은 진실'을 추적해 보는 이야기입니다. 여성이 소재인만큼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스토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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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아버지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아들의
<03. 세계 유일의 부부 카지노 가입
<카지노 게임 추천 04. 벌거벗은 여인, 중국의
건릉의 배장묘 중에서 현재 발굴된 무덤은 5 기基인데요, 그중에서 관람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는 곳은 장회태자묘章懷太子墓와 의덕태자묘懿德太子墓, 그리고 영태공주묘예요.
이 세 곳은 모두 근처에 모여 있는 데요, 관이 있는 지하 묘실墓室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답니다. 그중에서도 건릉의 지하궁전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을 가장 잘 달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 영태공주묘이죠. 그래서 여기에 건릉박물관을 만든 거구요.
어떻게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는 말일까요? 영태공주의 비밀을 밝혀라! 오늘의 미션입니다. 상금 걸려 있는 거, 다들 아시죠? ^^
소오생 가이더님의 간단한 설명과 주의사항이 끝나자 모두들 기대에 들뜬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린다.주어진 조별 활동시간은 두 시간. 버스는칼 같이 떠날 테니 늦으면 각자 알아서 숙소까지 돌아오란다. 정말일까? 흠,아직그런 경우는 없었지만, 빙글빙글 웃으면서 은근히 골탕 먹이는가이더 님이라면진짜그럴 지도...
장회태자는 누구고 의덕태자와 영태공주는 또 누구일까?
독서 노트를 펼쳐보았다. 서안 답사여행을 오기 전에 시험공부를 하듯 정리한 것들이다. 《삼국지》나 《홍루몽》등 대하소설을 읽으면 생소한 이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그럴 땐 이렇게 메모하면서 읽으면 흐름을 파악하기가 한결 쉽다. 대충 한 번 살펴보고 건릉박물관에 들어가면 좀 낫겠지?
측천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권력을 잡기 위해 자기가 낳은 혈육도 죽인 희대의 악녀라는데... 대체어떤 혈육, 어떤 상황이었을까?남들이 떠드는 말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내가 직접 판단해보고 싶었다.
측천무후는 고종 이치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두었다.
많다고 할 수도 없지만, 적지 않은 숫자다. 잘 정리 메모할 필요가 있다. 그기록 중에서 객관적 팩트 만을 모아서 하나하나 정리해 보았다. 소감도 간단히 메모해 보았다.
그녀에 대한 호칭은 이런 식으로 기록했다.
▶ 무조武照 : 황후가 되기 전. 또는 한 인간으로서의 호칭.
▶ 측천카지노 게임 사이트 또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 황후였을 때.
▶ 무측천 : 황제가 되고난 후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요절했다. 《자치통감》에서는 무측천이 황후에 오르기 위해 목 졸라 죽인 것이라고 하지만,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02. 아버지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02. 아버지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아들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온라인 카지노 게임에서 다룬 바 있다.
▶ 고종의 다섯 번째 아들이자 무측천의 장자.
▷ 네 살 때 어머니 무측천이 후궁에서 왕후가 되자 덩달아 황태자가 되었다.
▶ 착하고 똑똑했으며 덕망이 높아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 황제가 궁궐을 비우고 외유를 할 때 궁중의 전권을 행사하는 감국監國으로 일정 부분 정사에 참여했다.
▶ 몸이 허약하여 늘 아팠다. 23세에 사망했다. 부모에 의해 황제로 추존된 역대 최초의 인물이다.
※ 《당회요唐會要》와《신당서新唐書》에서는 모친인 무후가 짐살鴆殺(독주의 일종인 짐주를 마시게 하여 죽임)했다고 말한다. 근거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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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홍에게는 의양공주와 선성공주라는 이복 누나가 있었다. 모친 무후의 최대 정적이었던 소숙비의 딸들이다. 누이들은 나이 마흔이 넘도록 시집을 못 갔다. 무후가 두려워서 혼담이 없었던 것이다. 착한 이홍은 과년한 누이들이 안타까워 배필을 얻어달라고 상소를 했다. 그때 모친의 눈밖에 났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② 이홍은 부친 고종과 신하들의 많은 신망을 받았다. 감국이라는 직책으로 실제로 정사에도 참여했다. 그래서 '권력욕에 눈이 멀었던(?)' 엄마가 위협을 느껴 자기 큰아들을 독살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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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이들 역사책보다 더 빠른 시기에 나온《구당서》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조금 나중에 나온 《자치통감》에도 없다. 《자치통감》은 또 다른 내용으로 무조를 천하의 악녀로 묘사했던 역사책이다. 그런 책에서도 채택하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 중국 역사학계에서는 이홍의 사인은 폐결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측천무후가 죽인 것으로 나온다. 민간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아, 정말 이 자들...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그래도 명색이 역사책인데, 자기들이 멋대로 만들어 낸 '권력욕에 눈 먼악녀'라는 허상만을 근거로, 몇 백 년이나 지난 후에이렇게 함부로 조작해서 써도 되는 거야? 너무 화가 난다. 명예훼손으로 역사의 심판정에 고소라도 하고 싶다.
문득 인터넷에서 온갖 날조와 비방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병폐가 떠올랐다. 그 바람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나.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슬픈 소식에, 그때마다 내 유리 멘털은 또 얼마나 흔들렸나. 내가 무조였다면 어떻게 버텼을까? 생각만 해도 무섭다.
그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무측천이 나타났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며 코웃음을 친다. 흥=3 네 넘들이 암만 그래봐라, 내가 눈썹 하나 까딱할 줄 아니? 일천 년 역사 속에서 온갖 중상모략을 당한 그녀가 여유만만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의 강인한 멘털이 환하게 빛나 보였다. 아, 내가 이번 여행에서 만나야 할 게 혹시 이런 것 아닐까?
낙양 교외에 있는 이홍의 공릉恭陵. 고종과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먼저 세상을 떠난 후덕하고 현명한 맏아들을 효경孝敬황제로 추존했다. 역사상 최초로 아들을 황제로 추존한 것이다. 그들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 큰 아들 이홍이 스물셋의 나이로 요절하자, 22세에 태자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장회태자章懷太子였다. 세 차례 감국監國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 어렸을 때부터 매우 총명하고 용모가 출중하였다. 시문詩文에 뛰어나고 역사에 밝아 열아홉 나이에《후한서後漢書》에 주석을 달았다. 오늘날에도 그 학술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아버지 고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모친 무후의 사랑은 별로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왜 그랬을까?
▷ 당시 궁녀들 사이에 떠돌던 유언비어가 있었다. 무후의 친언니인 한국부인韓國夫人이 고종과 사통을 해서낳은 아들이라는 이야기.
▷ 남편인 고종 이치가 친정언니를 바라보는 그윽한 눈길에 무후가 속상해했다는 또 다른 기록도 있다.
한국부인韓國夫人
▶ 무조의 친언니. 이름은 무순武順.동생때문에 궁중에 자주 머물었다.
▶ 북방 선비족인 예주참군豫州參軍 하란월석賀蘭越石의 아내.
▶딸은 하란씨賀蘭氏.(이름은 알려지지 않음)모녀가 모두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
▶ 아들은 하란민지賀蘭敏之. 용모가 뛰어났으나 음행을 일삼았다. 심지어 무후의 큰아들인이홍의 태자비로 간택된 여인을 겁간하기도 했다.그 일로 태자 이홍의 혼례는 파혼이 되었고, 하란민지는무후의 미움을 샀다.
▶ 장회태자는 성장한 후에 우연히 유언비어를전해 듣고 몹시 불안해했다. 이에 무후는몇 번이나 ‘효孝’를 강조하는 편지를 써주었다. 역효과였다. 태자는 편지를 읽고모후가 친모가 아닐 것으로더 확신하고더욱 전전긍긍했다.
▶ 기어이 일이 터졌다. 고종과 무후가 총애하고 있던 도사 명숭엄明崇儼이 피살되었다.
▷명숭엄은 어떤 사람? 평소 고종과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장회태자는제왕의 그릇이 못된다, 셋째 아들(훗날 중종)과 넷째 아들(훗날 예종)이 제왕 감이라고 떠들었다는 것이다. 쯧쯧,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법인데...
▶ 장회태자가 배후 주모자로 밝혀졌다. 평민으로 강등, 파주巴州(오늘날의 중경)로 귀양을 갔다.
▷684년, 아버지 고종이 죽었다. 셋째 동생이 황제가 되었다가 어머니 무후에게 쫓겨났다. 넷째 동생이 황제가 되었다. 그때, 어머니 측천무후는 토번吐藩(티베트) 세력을 막기 위해 장군 구신적丘神績을 파주로 보냈다.
▶ 구신적은 평민이 된 장회태자를 핍박하여자살을 하게끔 유도했다.
▷ 측천무후는 그 사실을 알고 대로하여 구신적을 귀양 보냈다. 장회태자에게 왕위를 추증하고 융숭한 장례를 치르며 슬퍼했다.
《구당서》는 장회태자가 흉악한 어머니를 만나 억울하게 죽었다며 측천무후를 비난한다. 하지만 현대중국의 위대한 역사학자인 궈모뤄(郭沫若: 1892~1978)는 그의 죽음은 당시 재상인 배염裵炎의 농간일 뿐, 측천무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여러 가지 설만 분분하다.그의 죽음에 대한 별다른 근거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한 마디로 장회태자는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났다가 미스터리를 안고 죽음을 맞이한불우한 인재였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시종일관 측천무후와 장회태자를 '권력 다툼을 하는 모자'로 묘사한다. 물론 측천무후가자식을 죽인 '악녀'다. 한번 만들어진 이미지는 이렇게 완고하다.
장회태자묘의 벽화.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상) 대문 그림. <객사도客使圖185×247mm. 좌측 3인은 당나라 관헌들. 우측 3번째는 동로마(튀르키예)의 사신. 우측 두 번째는 신라 또는 고구려 사신으로 추정. 맨 우측은 말갈 사신. 사신들을 맞이하는 외교 석상이겠지만 웬지 장회태자의 출생과 죽음의 비밀을 수군대는 것 같다. 뭐지, 뭐지? 나두 좀 알자구...
(하) <수렵도(높이 100~200mm. 길이 890mm)의 일부.
내 생각에는 왠지 그가 측천무후의 친아들이 아닌 것 같았다. 여자로서의 느낌적 느낌이랄까? 남편 고종 이치가 친정언니와 사통을 해서낳은 사생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측천의 아들은 모두 네 명!
큰아들은 일찍 죽었지만, 황제로 추존해 주었다.
셋째 & 넷째 아들은 못났지만 아무튼 황제 노릇을 하게 해 주었다. 이 얘기는 다음에 다시.
결과론이지만... 둘째인 장회태자만 황제가 되지 못했다. 묘한 느낌이 든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만약, 내가 측천무후라면? 상상이지만 너무 끔찍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언니라니... 혹시 그렇다면 무후는 남편과 언니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는 이야기도 된다.남들에게 장회태자가 자신의 친아들로 알게 하려면 자신도 몇 달 동안 임신한 것으로 가장했을 테므로.
보통 여인이라면 그게 가능한 일일까? 얼마나 속을 썩였을까? 나라면 그런 포용력이 있었을까? 저간의 사정을 나름대로 헤아려보니 이번에도 측천무후가 후세의 비난을 일방적으로 뒤집어쓴 것 같아, 은근한 연민의 정이 싹터 올랐다.
< 계 속
장회태자묘의 벽화.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상) <마구도馬球圖 일부.마구는 당나라 황실의 공식 체육 종목이었다. 전장 8.2m. 남쪽 높이 1.7m, 북쪽 높이 2.4m. (하) <당唐 의위도儀衛圖. '의위대'란 '의장대'를 말한다. 높이 222mm. 너비 227.5mm.
▶ 과거에는 서안 성곽 남문 부근의 '비림碑林'이 섬서성 역사박물관 노릇을 했지만, 1991년 새롭게 건물을 완공하여 개관하였다. 170여만 점의 유물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세계적인 규모의 박물관이다.
▶ 서안에 가면 꼭, 반드시, 기필코가 봐야 하는 박물관이다. 관람에 약 3~4 시간 소요. 사전에 공부를 하고 가는 게 좋다.
▶ 입장료 : 여권/신분증을 가져가면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그러나 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긴 줄을 서야 한다.
▶ 특별전 입장료는 200元(약 4만 원). 일반 전시장도 바로 들어갈 수 있고, 고분 벽화의 진품도 볼 수 있다. 입장료 값어치를 한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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