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엄마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엄마와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할머니들이 엄마의 배 모양을 보면서 필시 아들 임신한 배라고 하셨다. 양갈래머리를 한 꼬마 여자아이는 할머니들이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평소와 같이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잠에 들었는데 일어나니 작은할아버지 댁 고모가 와 계셨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모를 쳐다보자 엄마랑
괜찮다고 믿었다. 버티는 일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으니까. 아무리 외로워도, 아무리 아파도, 혼자서 견디는 법을 배웠으니까. 하지만 어쩌다 문득, 생각보다 따뜻한 온기를 만났을 때, 나는 조금 방심하고 말았다. 이번만큼은, 이번 사람만큼은, 조금 기대해도 괜찮지 않을까. 살짝 기대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 마음 한 조각을 건네보았다.
- 만약에 말이에요. 다시 1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갈 거예요? 예전에는 아니었지. - 왜요? 빨리 늙고 싶었거든. 20대는 대부분 그러지 않을까? 학업과 커리어와 모든 것의 시작점에 있는 시기잖아. 끝이 보이지 않는 산세, 가파오는 숨과 후들거리는 두 다리. 케이블카가 있다면 좋으련만 했던 거지. - 지금은요? 가고 싶어. - 이제 정상
유년의 집은 20여 년 전 재개발로 철거됐다.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그 집을 영영 떠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염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도 하지. 그 집은 아직도 내 기억에서 선명하다. 제멋대로 개조된 한옥은 겉에서 보면 양옥처럼 보였지만 내부는 대들보와 서까래가 남아 있었다.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볼 때마다 흰색 회반죽 아래로 불거져 나온 나무
최신 게임을 하기에는 부족한 성능을 갖고 있는 컴퓨터가 네 대가 놓여있었다. 컴퓨터를 구매한 지는 십 년은 된 거 같았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오래된 은색 공중전화가 벽에 걸려있었다. 새로 칠한 듯한 페인트 냄새는 공중전화에 달린 숫자패드 속 벗겨진 잉크를 더욱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 공중전화가 바깥에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내가 속한 용
버틴다는 건, 때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견디는 일이다. 특별히 슬픈 일도, 특별히 기쁜 일도 없이. 그저 하루를 흘려보내고, 내일을 기약하는 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안다. 아무 일 없는 날이 쌓이면, 어느 순간 마음도 무뎌진다. 처음에는 견디려고 악착같이 마음을 다잡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냥 그러
오순도순 모여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피어나는 솔직한 대화들 피어나는 웃음소리들 가족들, 친구들, 연인과 함께 꽃잎은 절반 떨어졌지만 그래도 웃음소리는 가득하다. 봄이 끝나가지만 아쉽지 않은 건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꽃보다는 사람들이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시절이 되어준다. 언젠가는 돌아봤을 때 이
힘들고 우울할 때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 슬럼프가 왔다고들 하죠.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달려온 탓이겠죠. 슬프고 지쳐 쓰러졌다는 것은 많은 방향 중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뜻이겠죠. 가끔은 앞을 바라보고 걷기보다 지금 현재를 보고 잠시 쉬어보는 것은 어떠신가요? 가끔은 지쳐 쓰러진 자신을 탓하기보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버스 창문이 녹아 내리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버스 안 사람들의 옷가지는 한숨 품이 죽어, 승객들은 여유로운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뜻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날씨는 아니지만 이 정도 날씨면 시베리아에서는 충분히 봄이 왔다고 할 수 있다. 버스는 기온이 오른 날씨가 반가운지 속도를 내어 달렸다. 달리는 버스 옆, 사람들이 천천히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참는 걸 잘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모든 걸 삼켜버리는 데 익숙해진 걸까? 힘들어도 웃고, 서운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외로워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왔다. 그러다 문득, 작은 결핍조차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게 된 나를 발견한다. ‘나만 참으면 되지.’ ‘이 정도쯤은 괜찮아.’ 습관처럼 스스로를 설득해 왔지만, 때때로
용석이 형이 보낸 문자에 급하게 겉옷을 걸치고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기숙사에서 가장 가까운, 아직 운영하고 있는 약국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약국 안 왼쪽 구석에 있는 연두색 ATM 기기 앞에 섰다. ATM 기기에 쓰인 효성(HYOSUNG)은 볼 때마다 신기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신속하게 주머니 속 라임색 토스뱅크 카드를 꺼내 카드
학장실 문에 크고 굵은 글씨로 “겉옷은 벗고 들어오세요!!!”라고 쓰인 에이포 용지가 붙어 있었다. 느낌표 세 개를 보고, 두꺼운 겉옷을 급하게 벗어 근처 의자에 올려두었다. 코로 큰 숨을 들이마시고 똑똑똑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겼다. 학장실에서 “들어와”라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문고리를 비틀고 들어갔다. 안에는 병원 접수처처럼 보이는 창구가 있었고, 그
어릴 적에는 하고 싶은 것만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잘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은 마음을 뛰게 했지만, 잘하는 일은 삶을 지탱했다. 때로는 꿈과 생계를 저울질하며 내 마음을 달래야 했다. 그래서 고민했다.
오늘은 새로운 책 <매일의 영감수집>을 읽고 싶은 책으로 골랐다. 그날의 날씨, 기분, 컨디션, 흥미도에 따라 읽고 싶은 책이 달라지는 병렬독서자답다. 읽어야 할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을 얼른 읽고 두근두근 영감수집을 하러 가야지... 드디어 오늘 <월든>의 "호수들"편의 나머지 장을 다 읽었다. 사실 고민 없이 쓱쓱 넘기면 넘어가는 페이지들
어린 시절, 텔레비전 화면 속 패널들은 눈앞의 의문의 상자 하나를 앞에 두고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망설이며 내밀던 손끝은 곧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촉감에 질겁하며 비명을 지르던 그들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나조차 숨을 죽이고 화면을 바라보며 '아악!'
힘든 노동을 하는 것도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삼시세끼 고봉밥을 먹고 곧바로 디저트를 먹는 나는 뱃속에 거지라도 든 것일까? 분명히 밥 배 따로, 디저트 배 따로 일 것이다. 이런저런 삶의 무게로 무너질 때에도 입맛만큼은 떨어진 적이 없다. 당시엔 우울증이라고 했지만 아니었을 것이다. 우울한 사람은 절대로 그렇게 먹을 수가 없다. 가정환경이
어떤 관계는 위로보다는 연기를 강요한다. 나도 모르게 웃게 되고, 애쓰게 되고, 맞추게 된다. 칭찬을 듣고 싶어서, 미움받기 싫어서, ‘좋은 사람’처럼 살아온 시간들. 그런데 돌아보면, 그런 나를 가장 많이 지워낸 것도 결국 그런 관계였다. 무대 위처럼 살던 날들이 있었다. 늘 괜찮은 척, 여유로운 척, 웃고 있었지만 속은 점점 공허해졌고,
누군가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이가 있다는 것이 감사이자 위로 아니던가 나는 내 주변 모든 이의 행복과 그저 안온을 바란다. 조용히 편안히 바람 없고 따스히 무탈하기를 나와 동생 형과 누나 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당신 또한 그러하기를 이는, 나와 벽을 두고 척을 두고 대립하며 기를 세우고 날을 세운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주문이다
휘몰아치는 일상에 마음이 요동쳤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고 분노가 무엇인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뼛속까지 각인되었다. 늘 그랬듯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시간이 지나니 정말 기억은 흐려졌다. 그렇다고 사라지지 않을 기억이다. 삶을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고 누군가에는 생과 사를 오갈 만큼 중요한
17화. 힘 빼고, 가볍게 지금, 참 조용히 행복하다. 별일 없는 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고, 잠시 멈추어도 괜찮은 그런 하루.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나 자신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고맙다. 오늘은 그냥, 커피잔을 내려놓는 소리도 좋고 창밖 햇살이 유난히 평화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