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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r 09. 2025

07. 무덤 속의 경염대회

'측천무후'에 숨은 진실 (7)

※ 새로운 매거진[중국 여성의 성性과 사랑]을 시작하였습니다. 제1탄은 '측천무후에 숨은 진실'을 추적해 보는 이야기입니다. 여성이 소재인만큼 여성의 입장카지노 쿠폰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 개인 사정으로 이번 회는 발행이 많이 늦었습니다. 깊이 사죄드리며 앞으로 늦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스토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01. 카지노 게임 추천인가, 무카지노
<02. 아버지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아들의
<03. 세계 유일의 부부 카지노 가입
<카지노 게임 추천 04. 벌거벗은 여인, 중국의
<05. 출생과 죽음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06. 카지노 쿠폰의 죽음, 사건의 진상을





무덤 속, 미美의 콘테스트



나는 소오생 가이더 님의 뒤를 따라

점점 영태공주묘永泰公主墓의 심장부를 향해 들어섰다.


그 뛰어난 '예술품'이라는 건 대체 어디 있는 걸까?

고고학자가 된 기분으로 주위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공기가 점점 더 차가워진다.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앗! 여기다!

찬란한 빛이 묘실에 가득 차 있었다.

무덤의 전실前室. 여기가 진짜 '비밀의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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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카지노 쿠폰 전실로 들어서며 바라본 장면



사방의 벽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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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쪽을 바라본 장면



이게 바로 소오생 가이더 님이 말씀하신 그 '예술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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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하) 입구카지노 쿠폰 전실로 들어서며 왼쪽에 있는 벽화


(상) (하) 입구카지노 쿠폰 전실로 들어서며 오른쪽에 있는 벽화


오른쪽 벽에 그려진 벽화부터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위의 사진 오른쪽 부분 = 아래 사진)

실물 크기로 그려진 아홉 명의 궁녀들이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맨 앞의 궁녀 :신분이 제일 높은가 보다. 키도 제일 크다. 어깨에 하얀 숄을 걸치고 빨간 치마를 입었다. 얼굴에 기품이 넘쳐흐른다. 당당하게 걷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뒷줄 번 &번 궁녀 : 약간은 넉넉한 몸매. 서로서로 소곤소곤 귓속말을 건네며 미소로 대답하는 그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앞줄 두 번째 번 궁녀 : 야리야리한 몸매. 나이가 어려 보인다. 네모난 쟁반을 단정하게 들고 있다. 빨간 숄에 빨간 치마, 더없이 날렵하다. 쪽을 틀어 올린머리카락 아래로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가 너무나 고혹적이다. 가히 뒤태 미인이라 할만하다. 번 &궁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야, 역시 이 <아홉 궁녀도宮女圖 그림을 보고 계시는군요.
여기 벽화 중카지노 쿠폰도 제일 유명하죠. 누가 제일 눈에 들어오세요?


군데군데 벽이 헐어진 곳이 있긴 하지만...

너무나 생생해요. 정말로 살아 움직이는 여인네들 같아요.


신비로워요. 뭐라고 형용할 수가 없어요.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묘한 느낌이 드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가이더 님이 좀 설명해 주시면 안 돼여?


여기가 어디죠?


어디긴요. 영태공주 무덤 속이죠.


어? 무, 덤... 속?

그제야 깨달았다. 여기가 무덤 속, 죽은 자의 세계라는 것을.

근데 어쩜 이렇게 싱싱한 생명력이 넘쳐흐르는거지?


우리카지노 쿠폰 사극 드라마 속의 궁녀들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언제나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잔뜩 머리를 조아리고 있죠?
구중궁궐에 갇혀 기가 죽어있는 모습, 팔자타령이나 하면서 입방아나 찧어대는 모습...

평상시에도 그런데, 자기가 모시던 주인이 죽었다면 어떨까요?
자칫하면 함께 순장이고, 잘해봤자 상복 입고 징징 우는 시늉을 하지 않겠어요?
무덤 속 벽화에 등장한다면... 기껏해야 그런 '경건한(?) 모습'이겠죠.
아니... 아예 '궁녀들 따위'는 벽화의 소재로 삼지도 않을 거 같네요.

그런데 지금 여기는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미의 콘테스트 무대 같지 않아요?


정말 그렇네요?

무덤 속이 아니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스코리아 아니, 미스 당나라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는 화려한 무대 같았다. 이 벽화의 제목도 <궁녀도가 아니라 <무덤 속의 경염競艶 대회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머나, 이게 뭐지? 가슴 부위에 무슨 선이 그려져 있네? 이거... 설마... 젖가슴?

에이, 그 옛날에 그럴 리가...


굉장히 대담하죠?
당나라 때 여성들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답니다.


내 생각을 읽기나 한 듯이 가이더 님이 말한다.

나도 모르게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저런 옷을 입고 있는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음... 이걸 보시면 더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서안 근교의 분묘카지노 쿠폰 발굴된 것들이죠.
둘 다 삼채용三彩俑인데, 위의 것은 채색이 살아있는 토용이고, 아래 것은 퇴색이 된 도용陶俑이랍니다.


우와, 당나라 여성들이 진짜 이런 야한 옷을 입고 다녔다구요?

줄리아 로버츠가 오스카상 시상식카지노 쿠폰나 입는 드레스 같아요!




벽화를 잘 보세요.
21세기 국제영화제에 참가한 섹시한 여배우들처럼
모두 맨살에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야시시한 적삼 옷을 입고 있죠?

당나라 때 여성들은 목덜미와 어깨, 가슴의 1/3 부위까지 완전히 드러내고 그 위에 얇은 겉옷이나 숄을 걸치는 게 대 유행이었답니다. 상류층일수록 노출이 더 심한 옷을 입었대요.


네에? 당나라 여자들이 전부 다 이렇게 야한 옷을 입었다구요? 특별한 날만 입는 게 아니라 언제나 입었단 말인가요?


하하. 이런 옷을 늘 입기야 하겠어요? 추운 겨울에야 당연히 솜을 집어넣은 유의襦衣를 입었죠. 이런 얇은 적삼은 주로 여름에 말을 타고 외출할 때 입었던 거구요, 편하게 지낼 땐 남자 옷도 많이 입었다네요? 남편 옷을 같이 입었다는 기록도 있는걸요. 재밌죠?


네에? 남장을 하고 다녔다구여? 무협소설에나 나오는 얘기 아니었나여?

그것도 '하늘 같은' 지아비 옷을 '훔쳐' 입구요?

게다가... 여자가 말을 타고 외출을? 게다가... 이런 야한 옷을 입고?


자, 이쪽 벽화들을 보세요. 더 확실하게 보일 거예요. 맨 뒤에 따라오는 궁녀는 남장을 했죠? (빨간 점선)



어? 이 사람들이 남자가 아니라 궁녀였어요? 전 또 내시인 줄 알았죠?

근데 왜 맨 뒤에 있는 궁녀들만 남장을 했대요?


글쎄요? 신분이 낮은 궁녀는 험한 일을 많이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남장이 편했던 것 아닐까요?

아무튼 당나라 여성들은 주로 이런 야시시한 옷을 입고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어떤 후세 역사가들은 당나라를 '음란한 시대'였다고 맹비난하기도 하죠.

무측천이 '남첩'을 두면서 그 '음란 풍조'가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는 게 아마도 그녀를 '악녀'로 비난하는 가장 큰 이유일 거예요.


뭐, 뭐라구요? 여자들이 부... 불륜을?

들으면 들을수록 놀랍다. 가만있자... 이 가이더 이거, 순 사기꾼 아냐?

전공이 중국문학에 명색이 당송시대 문학박사라니...

완전 구라 푸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음...


어라? 그 표정... 그거 뭐죠? 지금 못 믿으시겠다는...?
가이더에 대한 신뢰 부족? 쩝... 증거를 보여드려야 하나...


[증거 1] 구라쟁이 소오생의 박사학위 증서. <philosophy가 문학이라고?


[증거 2]대당부용원에 복원해 놓은 당나라 여성들의 외출 모습. 어린 딸내미를 안고 탄 모습이 인상적이다.



음...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치, 은근 자랑질?


다시 한번 벽화를 바라보았다. 궁녀들의 복장이 어쩜 저렇게 대담하고 자유분방하담? 나는 살면서 번도 저런 옷을 입어본 적이 없는데. 아마 저런 야한 입고 밖에 나가사람들이 전부 쳐다보겠지? 사진 찍고 인터넷에 올리고 난리도 아닐 거야. 으으으...



음... 그럼 번은 남장 궁녀겠군. 다들 패션 감각이 빼어나네? 근데 어쩜 똑같은 스타일이 하나도 없지? 헤어스타일도 조금씩 다 다르고, 눈썹 화장도 각양각색...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네. 궁궐에서 살면서도 통제나 억압을 별로 받지 않은 것처럼 구김살이 전혀 없는 모습이야...




여기 이 ⑥번 궁녀가 제일 유명하답니다.
확대한 걸로 한번 보시겠어요?



어? 오른쪽 그림... 이거 번 궁녀 맞아요? 왼쪽 그림이랑 좀 달라 보이는 데요?


이야, 혜인 쌤, 역시 관찰력이 뛰어나시네요.


모야, 가이더 님이 웬 일로 내 이름을 다 불러주네?

게다가 '쌤'이라고? 음, 음... 모... 괜찮군...


영태공주묘의 <궁녀도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답니다. 1960년 발굴 당시 이미 도굴로 산소에 노출되어 많이 훼손된 상태였대요.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원본 벽화는 1963년에 섬서성 박물관으로 이전해 놓았죠.

그러니까 이 두 그림은 모두 원래 모습을 추정해서 복원한 거예요. 지금 영태공주묘카지노 쿠폰 우리가 보고 있는 벽화도 복원해 놓은 거죠. 근데 사람들한테 공개를 하다 보니 금방 훼손이 심해져서 그때마다 계속 덧칠을 하나 봐요. 그 바람에 인터넷을 보면 여러 버전이 돌아다니고 있죠. 오른쪽은 그중카지노 쿠폰 제가 제일 맘에 드는 걸로 고른 거예요.



아 그렇군요!다시 보니까 이 번 궁녀 정말 매력적이네요. 하얀 웃옷에 하얀 숄, 옥색 치마에 매듭이 달린 허리띠... 너무 상큼해 보여요. 근데 이거 와인 글라스 아녜요? 포도주 색깔이 절묘하게 잘 어울려요.


이야, 혜인 쌤, 역시 관찰력이 뛰어나시네요!!! 맞아요. 저런 다리가 높은 잔을 고족배高足杯라고 하죠. 근데 사람들은 고족배 형태에만 신경을 쓰지, 저게 투명한 유리잔이라는 거에는 별로 주목을 안 하더군요.

원래 포도나 유리는 실크로드를 통해 서방세계에서 들어온 수입품이랍니다. 서역의 고창국高昌國, 오늘날의 투루판吐魯蕃의 기후가 포도 재배에 너무 잘 어울려서 그 후로는 중국에서도 포도주를 생산하게 되었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잘 모르지만, 중국 와인은 전 세계적으로도 알아준다네요.


에휴... 소오생 가이더 님은 저게 문제다.

잘 나가다가 툭하면 삼천포로 빠진다. 괜히 와인 이야기를 꺼내서...


아, 지금 ⑥번 궁녀 얘기하고 있었죠? ^^;;


그래도 눈치는 좀 있군. 흐흐


소라 모양으로 틀어 올린 저 트레머리(나계; 螺髻) 아래, 하얀 목에 걸친 간결한 목걸이 하나. 진한 눈썹에 도도한 눈동자. 웃는 듯 아닌 듯, 저 입매... 모나리자의 미소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하하, 그래서 '당나라 최고의 미인'이라고 인터넷에서 칭송이 자자하답니다.


아니, 이거... 여자 얼굴을 너무 자세히 뜯어보는 거 아냐? 설마... 내 얼굴도?


아무튼 가이더 님의 사탕발림에 넘어갔는지, 나도 점점 저 당나라 궁녀들에게 동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저 얼굴이 경박하고 음란한 얼굴? 아니다. 자신감과 당당함, 기품이 넘쳐흐르는 얼굴이다. 의젓하고 지성적인 면모마저 엿보인다.






자, 이제 그만 가실까요? 다른 곳도 보셔야죠.


가이더 님의 재촉에 마지막으로 사방의 벽화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여기가 주검이 놓인 무덤 속이라니! 그러나 죽음의 음산한 그림자는 전혀 찾을 수 없다. “내 장례식에 놀러 오세요!” 웃음 짓는 영태공주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벽화 <궁녀도가 있는 영태공주묘의 전실 단면도.



우아한 정원에서 수만 송이의 꽃들이 서로 다른 개성을 뽐내며 아름다움을 다투는 경염대회를 관람하는 것 같다. 상업주의에 오염되어 천박한 웃음을 날리는 현대의 미인선발대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가 충만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당나라 여인들의 삶인가! 지엄한 궁궐의 법도를 지키며 숨죽이고 살아가야 했던 우리나라 궁녀들의 이미지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그것이 어디 궁녀뿐이었을까. 여염집 여인들은 왜 아니 그랬을까!


화려하고 육감적인 옷을 입었으면서도 기품이 넘쳐흐르는 당나라의 여인들



억압과 통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듯한 저 구김살 없는 모습, 자유분방한 개성, 당당한 자신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어디서 비롯된 것이겠는가.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여성 황제 무측천이 당나라 여인들에게 선물해 준 사회적 분위기 아니겠는가!


저절로 찬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궁녀들이 저러할진대 무측천은 얼마나 기품이 넘쳤을까.






영태공주 무덤의 후실에는 돌로 만든 육중한 관곽이 있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인 무연기의 관이었다. 관에는 그들 부부가 저승에서나마 은애 하며 잘 살라는 희망을 새겨놓은 듯, 원앙 한 쌍이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내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영태공주의 무덤을 나선 후에도 나의 뇌리에는 오랫동안 당나라의 여인들의 그 자신감과 창의성 넘치는 모습이 줄곧 맴돌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 여성들에게 무측천은 없다. 이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여성 스스로가 오랜 세월 동안 남성중심의 사회를 통해 전해져 내려온 의식의 억눌림에서 벗어나, 자아를 찾고 당당한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


그 당위성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전통사회의 굴레 속에서 마음속 깊은 곳에 불만과 거부감과 반항심만 가득 찼을 뿐, 현실 생활에서는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오로지 순종하기만 하며 살아왔던 내가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당나라 여성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많은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오늘 밤은 잠이 안 온다.

이럴 땐 소오생 가이더 님이 쓴 글을 읽으면 효과 만점이다. 금방 잠이 온다.






유행을 창조한 당나라 여성들



당나라는 유행의 시대라고 한다. 당나라의 도읍지인 장안長安은 세계의 유행을 선도했던 곳이었단다. 점잖은 역사가 님들께서는 그것이 못내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구당서舊唐書 · 여복지輿服志》를 보면 이렇게 투덜댄다.



“사회의 풍속이 사치를 숭상하여 법령도 따르지 않고 멋대로 비단과 같은 호사스러운 옷을 만들어 입었다. …… 위로는 궁궐로부터 밑으로는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서로 모방하여 유행을 따르는 풍조에는 귀천이 따로 없었다. 風俗奢靡, 不依格令, 綺羅錦綉, 隨所好尙。…… 上自宮掖, 下至匹庶, 遞相倣效, 貴賤無別。


혜인 생각 :

입이 한 자나 튀어나온 것 같다. 그들은 대체 왜 그렇게 유행에 대해 불만이었을까?




유행과 여성의 함수 관계



‘유행’이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았다.


“특정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수용하여 따르는 행동과 의복을 포함한 삶의 양식의 계속적인 변화 과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대중大衆’이다.옛날 말로 하자면 ‘백성’이요, 학문적으로 말하면 ‘피지배층’이다. 그들이 누구의 무엇을 흉내 낸다는 것일까? 상류층, 지배층의 모종의 행동과 삶의 양식을 동경하고 모방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유행’은 ‘억눌린 계층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동경'카지노 쿠폰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혜인 생각 :

와우! 유행이 ‘억눌린 계층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동경'카지노 쿠폰 출발했다고?
그럴듯한데? 일단 밑줄 쫙―, 메모해 보자.



‘유행’은 당연히 당나라 때보다 훨씬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후한서後漢書》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지도층이 좋아하면 백성들은 반드시 더욱 심하게 모방했다. 上之所好, 民必甚焉。


▶ “궁 안에서 높게 틀어 올린 트레머리를 좋아하면, 온 천하의 트레머리가 한 자尺나 올라갔다. 궁 안에서 넓은 눈썹을 좋아하면, 온 천하의 이마 절반이 눈썹으로 뒤덮였다. 궁 안에서 넓은 옷소매를 좋아하면, 온 천하의 옷소매가 비단 한 필을 통으로 사용했다. 城中好高髻, 四方高一尺; 城中好廣眉, 四方且半額; 城中好大袖, 四方全匹帛。



여기서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유행은 주로 궁중에서 출발하여 온 천하에 퍼져나갔다.

둘째, 유행에 특히 민감한 계층은 여성이었다.

셋째, 이는 피지배층 중에서도 여성이 가장 억눌린 삶을 살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혜인 생각 :

여자가 유행을 선호하는 게... 가장 억눌린 삶을 살았다는 반증이라고?
모야, 자꾸 잠이 달아나잖아?



그러나 여성 황제 무측천 덕택에 억눌린 의식에서 벗어난 당나라 여인들은 상류층의 복식을 무조건 흉내 내지만은 않았다. 그녀들은 '유행의 모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의 개성을 살려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유행으로 창조해 나갔다.예를 들어보자.



혜인 생각 :

유행을 따라간 게 아니라 창조해냈다구? 그게 무슨 말... 이지? 그 옛날 당나라 여인들이?



‘풍성함’과 '날씬함'


‘풍성함’은 당나라 유행의 가장 큰 특색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 여인들은 풍성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이는 모란꽃을 가장 사랑하여, 머리에 모란꽃 비녀를 꽂고 다니기를 즐겨했다. 그리고 풍성한 몸매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풍성한 치마를 즐겨 입었다.


당나라 때의 유명 화가 주방周昉의 <잠화사녀도 簪花仕女圖 일부. 견본. 46 ×180cm. 요녕성박물관 소장. '잠화'는 조화造花로 만든 비녀. 오른쪽 여인은 커다란 모란꽃 비녀를 꽂았다.



임금들도 풍성한 몸매의 여인들을 좋아했다. 현종 이융기가 그토록 사랑했던 천하제일의 미녀라는 양귀비도 사실은 풍성한 몸매의 여인이었다고 한다.




혜인 생각 :

아니 왜 양귀비를 저렇게 발가벗겨 놓은 거야? 참 내...
근데 글래머이긴 하지만... 왼쪽 여성들처럼 그렇게 '풍성한 몸매'도 아닌데?
요새 남자 조각가 넘들이 지네 좋은 대로 조작한 게 틀림없어...


많은 학자들은 그 이유를 당나라 이씨李氏 황실이 유목민족 출신이라는 데서 찾는다.

하긴 그렇다. 유목민족은 늘 식량이 부족하여 풍성한 먹거리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았다.


유목민족에게서 탄생하였을 듯한 ‘아름다울 미美는 ‘양 ’과 ‘커다랄 ’의 합성자이다. 그들에게는 비상시에 언제나 잡아먹을 수 있는 ‘커다란 양’이 심미審美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당나라 사람들이 ‘풍성함’을 심미의 척도로 삼았던 이유를 당나라 황실이 유목민족 출신이라는 점에서 찾는다.




아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풍성함’은 유목사회뿐만 아니라 농경사회에서도 심미의 기준이다. 문화인류학적으로 볼 때, 민족과 시대를 막론하고 노동력과 생산력이 필요한 사회에서는 어디서든지 ‘풍성함’을 심미의 기준으로 삼았다.


농사를 짓고 가사家事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자식이 귀한 집에서는, 당연히 일 잘하고 아이를 쑥쑥 잘 낳아주는 풍성한 몸매의 며느리가 예쁘지 않겠는가. 중국의 유목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이유로 조선말까지는 그런 여인을 선호했다. 그러므로 ‘풍성함’은 유목민족만의 미적 기준은 아닌 것이다.


당나라 이전의 남북조 시대도 상당수의 왕실이 유목민족이었지만, 그들은 날씬한 몸매의 여인을 선호했다. 그 현상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당나라 사회가 ‘풍성함’을 좋아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당나라 여성들이 ‘풍성함’을 선호한 것은 '자신감의 발로'였다.


노동력과 생산력이 필요한 사회에서 ‘풍성함’을 심미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어디까지나 지배층의 필요성에 의해서였다. 여성 스스로 ‘풍성함’을 심미의 기준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당나라 여성들은 달랐다. 그녀들은 이제 무측천 덕분에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다. 더 이상 지배층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몸매 따위로 남성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은연중에 형성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현대문명사회에서는 ‘날씬함’을 미적 기준으로 삼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필사적으로 다이어트에 나선다. 자신감의 부족이다. 돈 많은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러나 뚱뚱하고 돈 많은 남성들은 자신의 풍성한 몸매 때문에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돈과 권력만 있으면 예쁜 여성들이 얼마든지 달려든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혜인 생각 :

어째 쫌 기분이... 안 좋네?
그럼 내가 다이어트하는 것도 돈 많은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발버둥 치는 거란 말이야?
가이더라고 이렇게 함부로 근거 없는 말을 해도 되는 거야? 은근 열받네?



미국의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하빌랜드(William A. Haviland)의 분석에 의하면, 현대인들이 선호하게 된 ‘날씬함’의 미적 기준은 1960년대 서구의 성형의사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장삿속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나 등장하는 팔등신의 여인들을 미적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상업주의와 결탁한 황색 언론들을 통해 그 사실을 널리 홍보하여 사람들에게 세뇌를 시켰다는 것이다.


현실 속에 팔등신의 여인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그 결과 수많은 여성들이 콤플렉스에 빠져, 저마다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지금도 성형외과로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음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자신감의 결여가 가져온 어처구니없는 세뇌작용이 빚은 씁쓸한 사회적 현상이다.


혜인 생각 :

헉... 하빌랜드... 음메 기죽어...
그... 랬... 구... 나... ㅠㅠ



그러므로 당나라 유행의 최대 특색은 ‘풍성함’이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당나라 여인들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다.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복장이 아니다. 자신감의 발산이다.현대의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혜인 생각 :

공감 100%!
나도 처녀 때는 미니스커트 잘 입었는데... 흑...



같은 이유로 당나라 여성들은 노출이 전혀 없는 남장男裝도 즐겨 입었다. 위의 <궁녀도에서, 맨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남자가 아니다. 남장을 한 궁녀다. 지엄한 궁궐에서 궁녀들도 남장을 자유롭게 하는 개방적인 사회, 그것이 여성 황제 무측천이 만든 당나라의 사회 풍토였다.


이것이 음란한 사회인가? 소오생이 보기에는 이런 풍토야말로 지극히 건강해 보인다. 무측천의 시대는 여성 스스로가 자신감을 가지는 사회여야만 건강한 사회가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해주고 있다.


혜인 생각 :

무측천의 시대가 건강한 사회라고? 정말?
좀 더 많은 책을 읽으며 좀 더 많이 생각해 봐야겠다...



당카지노 쿠폰 유행의 또 다른 특징은 ‘창조’다.


당나라 여성들은 단순히 상류층의 행동과 삶의 양식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그녀들은 나아가 스스로의 개성을 살려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창조해 나갈 줄 알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화장법’이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모두 황실이 아닌 여염집 무덤에서 출토된 당나라 여인들의 모습이다.



모두 얼굴에 여러 가지 디자인의 타투(tattoo)를 패션으로 그려 넣은 것이 독특하다.


①번 여인은 눈썹 옆에 상처 난 모양을 매력의 포인트로 초승달처럼 그려 넣었다.

③번 여인은 다른 여인과 달리, 이마 한가운데의 타투는 없지만, 눈 끝에 까만 광택 종이를 길게 오려 붙였다.



④번여인은 입술 좌우에 점을 찍은 것이 눈에 띈다.


그리고 모두 뺨을 발그레하게 화장했지만, ⑤번 ⑥번 남장 여인은 아예 술에 취한 것처럼 뺨이 새빨갛다. 당시에 유행한 이른바 ‘주훈장酒暈粧’이다. 여섯 명이 모두 그 유행을 따랐으면서도 농도濃度는 저마다 다른 것도 개성이 넘쳐 보인다.


섯 명의 여인들은 모두 타투 외에도 각자 개성껏 독특한 화장을 하고 있다. 입술에 연지를 다양한 모습으로 바른 것은 기본이고, 눈썹도 저마다 다르게 그렸다. 헤어스타일도 저마다 다르다.


이렇게 당나라의 여인들은 사람마다 자신만의 다양하고 기발한 화장법을 사용했다.

농염하고 화사하면서도 의젓함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모습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다.

누가 이 여인들이 천 삼백 년 전의 옛날 사람들이라고 믿겠는가.

오늘날에 재현한다 해도 최첨단의 멋진 패션 아니겠는가.


혜인 생각 :

읽고 보니 정말 그렇네... 저런 식으로 자신감을 표현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는 걸?
무측천이 당나라 여인들에게 이런 자신감을 심어줬단 말이지? 멋있다...




타투, 즉 문신은 옛날부터 세계 여러 지방에서 행해져 왔지만, 중세 이후의 유럽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왔다.


기독교가 득세했던 중세 유럽카지노 쿠폰는 “너희는 몸에 어떤 무늬도 그리지 말라.”(레위기 19장 18절) 성경구절의 교조적 해석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했다.


명카지노 쿠폰와 조선 시대에는 ‘우리 몸은 부모님이 주신 것이니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유교적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문신을 패션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기껏해야 도망친 노비에게 시커먼 먹물 자형炙刑으로 문신을 새길 생각이나 했으니, 그 꽉 막힌 생각과 폐쇄적 사회 분위기가 그저 답답할 뿐이다.


명나라와 조선은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폐쇄적인 나라였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아직도 조선시대의 그 폐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혐 여혐의 극심한 대립도 그 뿌리를 찾아보면 바로 그 때문이다.


혜인 생각 :

근데 왜 하필 명나라와 조선 시대에 폐쇄적인 사회가 된 걸까? 그러고 보니 신라 향가나 고려 민요를 보면 상당히 개방적인 느낌이던데... 내일 가이더 님한테 꼭 물어봐야 되겠다...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에서 발견되는 문신들은 거의 똑같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특정인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서, 바늘로 살갗을 찔러 균열이 생기는 곳에 물감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렇게 영구적인 성격이었으니 다른 목적으로 문신을 활용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나라 여인들은 생각이 참으로 기발했다. 금박 종이나 광택 종이를 오려 붙이거나, 소라껍데기 가루, 운모雲母 부스러기 등을 붙이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영구적이 아니라 일시적이었다. 기분 내킬 때마다 서로 다른 개성과 아름다움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액세서리를 겸하는 패션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창의성의 승리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타투가 대유행하고 있다.


이전에는 조폭들이나 문신을 했다. 그러나 ‘문신’은 영구적인 것, ‘타투’는 일시적인 것으로 구별하게 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앞 다투어 타투를 하고 있다. 언제나 지울 수 있다는 점이 여성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패션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 타투의 원조가 바로 곧 당나라의 여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감과 창의성을 선사한 존재가 바로 무측천이었던 것이다...



혜인 생각 :

음냐 음냐... 아, 모라는 거야... @#$%^&%$#



< 계 속


다음부터는 무측천의 남첩과 사랑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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